[CEO&Story]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

꿈 많던 라디오 키드가 국내 최고 산업용 컴퓨터 만들죠
방위산업체 다니다 미국 출장서 애플 8비트 컴퓨터 보고 창업 결심
아들 백혈병·부인 폐결핵·본인 암… 가족 위협 병마 딛고 재기
갤럭시 검사장비 채택 등 점유율 30%대로 가파른 성장세



코흘리개였던 어린시절 외삼촌이 만든 진공관 라디오에 매료돼 중ㆍ고등학교 내내 전자기기 만들기에 열중하던 '라디오 키드'. 꿈을 좇아 전자공학 분야에서 안정적인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정보기술(IT) 혁명을 예감하고 과감히 창업의 길을 택하는 승부사.

자신과 가족들을 끊임없이 위협한 병마(病魔)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국내 최고의 산업용 컴퓨터 전문업체를 일궈낸 기업가가 있다. 여의시스템을 이끌고 있는 성명기(58ㆍ사진) 대표다.

25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 소재 여의시스템 사옥에서 만난 성 대표는 "나와 여의시스템의 역사는 곧 끊임없는 도전의 여정이었다"며 "'진화하는 기업'을 목표로 항상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온 덕택에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고 힘줘 말했다.

그의 말처럼 국내 산업용 장비 시장에서 여의시스템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반도체와 휴대폰 등의 제조설비에 필수인 산업용 컴퓨터는 30%대의 점유율로 매년 시장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각기 다른 고객의 요구에 맞는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을 적용한 '맞춤형' 생산이 가능한 것이 여의시스템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생산라인에 여의시스템의 검사장비를 채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전 폭발과 혹한ㆍ고온 등의 극한상황을 견디는 '방폭컴퓨터'는 산업용 컴퓨터 분야에서 이 회사가 쌓아온 노하우가 집약돼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그 탁월한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

시스템통합(SI)과 컴퓨터 보안장비뿐만 아니라 디지털 사이니지(디지털 전광판)도 여의시스템의 주요 먹거리다. 특히 3년 전에 시작한 디지털 사이니지 사업은 기존에 매출을 책임졌던 산업용 컴퓨터를 대신하는 회사의 '캐시카우'로 부상했다.

"3년 전만 해도 70%였던 산업용 컴퓨터의 매출 비중이 지난해에는 40%로 줄었어요. 대신 디지털 사이니지는 40%로 늘었죠. 끊임없이 아이템을 발굴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는 생각으로 매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쏟은 노력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이렇듯 다양한 여의시스템의 사업군들은 언뜻 보면 중구난방으로 보인다. 하지만 크게 보면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제어 시스템'이라는 틀 안에서 기본 기술을 공유하고 있다. 성 대표는 "80~90%의 비슷한 기술을 적용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제품을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이라며 "덕분에 지난 2008년 당시 글로벌 경기침체로 기존 사업군 매출이 1년 새 20%로 줄었지만 다른 사업이 이를 보완해 오히려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항상 신규 사업 발굴에 주저하지 않고 시장 개척에 거리낌이 없는 성 대표의 과감한 도전정신은 그가 겪어온 삶의 궤적에도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학창시절 매일 전자기기를 부수고 조립하기를 반복하고 수업시간에는 교과서 밑에 전자회로 사전을 펴놓을 정도로 뜨거웠던 전자공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자연스럽게 대학 전공과 졸업 후 진로를 일찌감치 결정했다.

방위산업체 연구소에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 성 대표는 그러나 1983년 미국 출장에서 만난 애플의 8비트 컴퓨터를 보고 곧바로 창업을 결심했다. "방산장비의 제어장치와 애플 컴퓨터를 결합하면 산업용 설비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인의 반대에도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는 그는 그해 7월 여의시스템의 전신인 여의마이컴을 만들며 기업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애플컴퓨터 판매로 시작한 사업은 이후 그의 구상대로 산업용 컴퓨터 개발 쪽으로 방향이 잡힌다. 대전 표준과학연구소와 동국합섬 등 주요 거래처로의 납품이 이어지며 슬슬 경영하는 재미를 알아가던 그였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고난이 성 대표의 발목을 잡는다.

창업 이듬해 세 살배기 아들이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 불행은 계속돼 그 다음해에는 부인은 폐결핵에 걸리고 1년 뒤 성 대표 본인에게는 위암이 찾아오는 등 일가족 모두에게 병마에 시달렸다.

병원비 부담에 가정도, 사업도 풍비박산 위기에 몰렸지만 그와 가족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고 결국 1991년 완벽하게 병을 극복해낸다. 여의시스템이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오른 것도 이때부터다.

성 대표는 "사업에 어려움이 생길 때면 '죽음도 이겨냈는데 이 정도도 못 견딜까'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게 되더라"며 당시의 고난이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준 셈이라고 회고했다.

지금의 여의시스템을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또 하나 있다. 2000년대 초반 높은 인건비와 심각한 노사분규를 피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국내 업체들이 속출하며 여의시스템을 포함한 산업용 설비 제조업체들에 된서리가 떨어진 것.

매출은 줄고 적자는 쌓이는 상황에서 임원들은 그에게 '직원 30% 감축'을 제안했다. 하지만 성 대표가 선택한 해결책은 구조조정이 아닌 '투명경영'과 '사업부ㆍ팀별 경쟁체제' 도입이었다.

"시스템을 바꿔서 기업 경쟁력을 높이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의 경영상태를 사원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대신 회사 실적과 사원 인센티브를 연계해서 사원 개개인과 팀별 성과에 맞춘 철저한 차등 성과급 제도를 시행한 것이죠."

여기에는 "중소기업은 무한 경쟁체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성 대표의 평소 지론이 담겨 있다. 덕분에 당시 국내 업계를 석권하던 1위 업체가 상장폐지되며 몰락의 길을 걷는 동안 여의시스템은 이후 8년간 순이익이 연평균 50%씩 신장하며 눈부신 성장을 이어가게 된다.

여의시스템의 성장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올해는 그간의 숙원이던 코스닥 상장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성 대표는 "현재 상장예비심사 중으로 다음주에는 실사가 예정돼 있다"며 "이르면 오는 8~9월에는 상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자신했다. 제품 수주도 꾸준히 이어지는 만큼 올해는 지난해의 1.5배 수준인 500억원대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오는 하반기에는 키오스크 사업 확대에 주력한다. 그는 "지난해 납품한 시외버스 무인발매기가 올해 본격적으로 가동되며 관련 분야에 대한 기술적인 노하우가 축적될 것으로 본다"며 "이를 토대로 키오스크를 이용한 또 다른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역설했다.

갈수록 고령화되는 사회 트렌드에 맞춘 새로운 아이템도 구상 중이다. 성 대표는 "기존의 산업용 설비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어 과거와 같은 급속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여의시스템이 가진 임베디드 모듈 제조능력을 활용한 의료기기 사업이 미래 먹거리로 적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존에 수동으로 작동해야 했던 치료 장비에 이 회사의 컴퓨터를 탑재, 자동화뿐 아니라 주치의에게 환자의 상태를 전송하는 등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노인 환자를 위한 '헬스케어' 제품이 그 좋은 예다. 이를 통해 2015년에는 연매출 1,000억원대로 키워낸다는 목표다.

평소 취미인 암벽등반에서 경영의 지혜를 찾는다는 성 대표는 "암벽을 오르는 과정은 정말 고통스럽지만 그런 만큼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커진다"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겸손한 자세로 사업에서도 험난한 도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He is…


▦1954년 대구 ▦1980년 연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0~1983년 휴니드테크놀로지 연구소 연구원 ▦1983~1991년 여의마이컴(여의시스템 전신) 대표 ▦1991년~ 여의시스템 대표이사 ▦2002년~ 한국자동제어조합 이사 ▦2009년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겸임교수 ▦2011년~ 이노비즈협회 수석부회장






생존 위해선 개인 능력 키워야… 외국어 등 성적따라 인센티브


매일 아침 '학교'로 출근하는 여의시스템 임직원

여의시스템의 모든 임직원은 매일 아침 '학교'로 출근한다. 이 회사는 지난 2003년부터 대학과 비슷하게 직원 개개인에게 학점을 부여하는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총 50학점의 다양한 과목 중 1년에 최소 23학점에 달하는 과목을 수강한 직원에게는 성적에 따른 '교육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이는 기존 성과급의 10% 수준으로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하도록 하는 동기부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이 이 같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중소기업이 생존하려면 경쟁체제를 구축할 수밖에 없다"는 성명기 대표의 신념 때문이다. 그는 중소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기업의 직원 수준이 '하향 평준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보니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직원이 중소기업에 입사한다고 해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고 만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비해 직원 개개인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게 중소기업의 현실입니다. 이를 자체 교육과 연계한 인센티브 제도로 극복하고자 한 것이죠."

현재 여의시스템이 개설한 과목은 영어와 중국어 등 어학뿐 아니라 경영과 기술교육까지 다양하다. 특히 사내 모임인 '여의포럼'에서는 올해 이현재 전 중기청장(현 하남시 국회의원)과 이민화 KAIST 초빙교수 등 중소벤처업계의 대표 인사들을 강사로 초청해 사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교육의 성과는 곧바로 나타나고 있다. 성 대표는 "무엇보다 직원들 스스로의 만족도가 높다"며 "교육학점을 많이 받는 직원은 자연스럽게 업무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체계적인 교육시스템과 더불어 최고경영자(CEO)와 직원 간의 자유로운 소통도 이 회사의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힌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찾은 성 대표의 집무실에는 다른 곳과 달리 손님 접대를 위한 탁자 대신 회의용 테이블이 놓여 있다. 사원과 대리급 평사원을 불러 회사의 문제점과 애로사항에 대해 솔직한 얘기를 듣는 'CEO와의 대화'가 바로 여기서 열리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기업 경영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평사원들의 대화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에 대해 성 대표는 "사장은 직원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도우미'가 돼야 한다는 것이 내 경영철학"이라며 "비즈니스 모델뿐 아니라 회사 시스템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기업이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성 대표는 지난해 뛰어난 실적을 올린 임원 연봉을 자신보다 높게 책정하는 실험에 나섰다. 그는 "임원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면서 동시에 그에 걸맞은 책임도 지도록 한 것"이라며 "앞으로 임원의 절반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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