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찬물 끼얹는 '브라질 코스트'

입국심사에만 1시간… 택시잡기는 별따기…
■ 서울경제 기자 상파울루 르포
잇단 시위에 현수막 하나 없어… 경기장 곳곳 공사·치안도 부재
"월드컵 효과커녕 경기침체 깊어질라" 고민

2014 브라질 월드컵 개막을 3일 앞둔 지난 9일(현지시간) 상파울루에 위치한 아레나데상파울루 경기장의 관람석에 지붕이 아직도 설치되지 않았다. /양준호기자

지난 1980년대 화장실에서나 볼 수 있었음 직한 우중충한 타일 벽면. 그 벽면 사이로 몇 번이나 휘어졌는지 알 수 없는 S자형 대기줄에 400여명의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다. 오전6시, 이른 아침인데도 간단한 입국심사를 받는 데만도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여기저기서 "벌써 몇십 분이나 기다렸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2014브라질월드컵 개막을 3일밖에 남겨두지 않은 9일(현지시간) 드러난 상파울루 구아를류스국제공항의 현주소다. 게다가 낮시간에는 공항에서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브라질 코스트(브라질의 낙후된 인프라와 행정 때문에 드는 비용)'가 월드컵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특히 브라질 사회는 아직 월드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상파울루의 중심지 파울리스타대로에서 만난 직장인 클라우디아 파졸리씨는 "매일같이 월드컵 반대시위가 파울리스타에서 열리고 있다"며 "월드컵 개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월드컵 성공개최를 기원하는 목소리도 찾아보기 힘들다. 파울리스타대로를 제외한 인근 세(Se)성당이나 삼성과 다우 등 다국적기업 본사가 있는 신시가지 브로클린에서는 월드컵 관련 현수막이나 월드컵 깃발 등이 하나도 걸려 있지 않았다. 우리은행 브라질법인의 박노석 차장은 "시위대의 표적이 될까 봐 그런 것 같은데 월드컵 분위기가 전혀 안 난다"고 말했다.

월드컵 개막식과 개막전이 열리는 '아레나데상파울루'는 경기장 관람석 지붕을 다 만들지도 못했다. 주차장도 마련돼 있지 않아 인근 공터에 땅 고르기 작업을 하고 있다.

치안 문제도 그대로다. 9일에도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지프 2대에 올라타 상파울루 시내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외국인들은 세성당 같은 곳에서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다. 십중팔구 강도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레나데상파울ㄹ' 경기장 인근은 상파울루에서 차량절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이타케라 지역으로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그나마 개막전에는 브라질 정부가 차량진입을 통제하기로 했다. 이 경우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지만 파업으로 그마저도 어렵다.

특히 지하철 파업으로 가뜩이나 심각한 교통체증도 더 나빠지고 있다. 시내에서는 5~7㎞ 거리도 한 시간가량 걸린다. 관람객들에게 개막전에 어떻게 오라는 것인지 답이 안 나온다. 브라질의 월드컵 준비상황과 비슷하다.

더 큰 문제는 월드컵 이후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투자와 관광객 증가로 경제가 좋아지는 월드컵 효과는커녕 되레 삶의 질이 악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9일(현지시간) 오후 기자가 찾은 상파울루의 동대문시장인 봉헤치루 거리는 옷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사는 이들은 적었다. 한 의류가게 직원은 "경기가 좋을 때는 다른 지역에서 버스를 대절해 인근 도로에 주차해놓고 옷을 사갔다"며 "지금은 경기가 좋지 않아 이런 것은 기대조차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월드컵 개최에 따른 정부 부채 증가를 걱정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현지 브라데스쿠은행의 펠리피 와시코프 프랑크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월드컵 전에 끝내겠다고 했던 인프라 투자는 오는 2016년에야 완료된다"며 "지난해 2.5%였던 경제성장률이 올해는 월드컵이 개최됐음에도 1.5%로 떨어질 것이며 이는 너무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질 내부적으로 월드컵 반대시위가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구에게 쓰는지, 또 효과가 있는지 모르는 월드컵 관련시설 투자보다 병원이나 학교 서비스를 확충하는 데 이용하자는 논리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에는 노동자들이 월드컵 반대시위에서 "급여를 30~40% 올려달라"는 결론으로 몰아가고 있어 갈등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