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31일 본회의를 열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외국인투자촉진법 처리를 두고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외촉법 개정안은 국내 기업이 증손회사를 통해 외국 회사와 공동 출자할 때 최소 지분율을 100%에서 50%로 낮추는 방안을 담고 있다. 현재 SK와 GS 등이 2조3,000억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수립했지만 법안 개정이 미뤄지면서 1년 가까이 투자가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회 통과를 요청하는 등 신규 일자리 창출과 함께 외자유치를 위해 반드시 개정이 필요한 핵심 경제활성화 법안으로 꼽혔다.
여야는 외촉법 개정안을 두고 막판까지 진통을 거듭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민주당이 외촉법 개정안에 반대할 경우 국정원 개혁입법에 대해서도 반대할 것이라며 압박했고 민주당은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이자 국내 기업 차별대우라고 맞섰다.
특히 민주당 소속 산업자원통상위원회 위원들은 외촉법 개정안 통과 여부를 전날 지도부에 일임했음에도 이날 의원총회에서 다시 반대 의사를 표명해 심각한 고비를 맞기도 했다. 특히 박영선 법사위원장이 "외촉법만큼은 내 손으로 상정하지 못한다"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만든 지주회사법의 근간을 흔드는 법을 하루 만에 뚝딱 처리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발했다.
국회 선진화법에 따르면 여야 지도부는 법사위 안건 회부를 생략하고 이를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수 있었지만 막판까지 협상을 벌였다. 국가정보원법을 넘어 여야가 예산과 법안을 일괄 처리하려 했는데 외촉법이 막판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이다. 민주당은 결국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검찰개혁의 핵심인 상설특검제 도입 보장을 요구했고 새누리당은 이에 국정원 개혁입법을 내년 2월로 미루자고 역제안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본회의에서는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이 통과됐다. 여야 의원은 순환출자가 지배주주의 지배력 유지 및 강화, 편법적 경영권 승계 방법으로 활용되는 등 경제력 집중에 따른 폐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에 따라 대기업 계열회사 간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했다. 다만 이 개정안은 회사의 합병과 분할,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 합의에 따른 계열사 출자나 증자로 신규 순환출자가 발생하거나 기존 순환출자가 강화되는 경우 예외로 규정했다.
일명 밀양 송전탑 지원법으로 불린 송변전 설비 주변지역 보상과 지원에 관한 법률안도 이날 진통 끝에 통과됐다. 이 개정안은 송변전 설비 주변 주민의 토지가치와 주택가격이 하락한 경우 보상이나 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장하나 민주당 의원 등 의원 3명은 법안투표에 앞서 반대토론을 벌여 법안통과 저지를 시도했지만 결국 재석의원 213명 중 찬성 129표, 반대 43표, 기권 41표로 원안대로 국회의 벽을 넘었다.
국회는 이날 이들 법안 외에 △아동이 학대당해 사망할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안과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범죄 예방을 위해 금융회사의 본인확인 조치를 의무화하고 이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온라인이나 전화 등으로 대출이나 저축상품 등을 해지할 때 금융회사가 본인이 맞는지 의무적으로 확인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의무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또 △사채와 미등록 대부업체의 모든 대출에 대한 최고이자율 상한을 현행 연 30%에서 25%로 낮추는 이자제한법 개정안(7월 시행)과 △채무자에게 빚을 갚으라는 독촉전화를 할 수 없게 한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또 국회는 국민체육진흥법 일부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국가대표 선수나 지도자가 훈련이나 국제경기 중 사망 혹은 장애를 입으면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 법은 신현종 국가대표 양궁 감독이 터키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도중 사망한 후 보상방안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법으로 '신현종 법'으로 불린다.
국회는 특히 △지방인재 채용을 의무화한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과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강화를 위한 도로교통법 개정안 △택시 업계와 기사의 지원 방안을 담은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안 등도 본회의에서 모두 의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