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17개 자치구가 이미 양육수당 예산이 바닥난 것으로 확인됐다. 자치구들이 추경을 편성해 정부지원을 받더라도 서울시가 시비를 더 이상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두 달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됐다. 현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면 10월부터 보육대란이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일 서울시와 자치구에 따르면 당장 9월치 양육수당을 지급할 예산이 없는 자치구는 17개에 달한다. 이미 추경을 편성해 정부 목적예비비를 받은 강남ㆍ서초ㆍ종로ㆍ중구 등과 그나마 재정 형편이 나은 용산ㆍ양천ㆍ송파ㆍ강동구 등 8개를 제외한 나머지 자치구들이 모두 해당된다.
서울시 양육수당 지원 대상 아동은 총 40만8,000명으로 0~5세 연령별로 월 10만∼20만원이 지급되고 있다. 서울시 양육수당 예산은 매월 325억원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서울시가 지원하는 시비는 전체 47%인 154억원, 국비는 94억원(29%), 구비가 77억원(23.5%)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서울시의 양육예산도 8월로 끝났다는 점이다. 양육예산의 절반을 지원해온 서울시 예산이 끊기다 보니 재정이 취약한 구들은 당장 9월 양육예산 지급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양육예산은 서울시가 매월 20일 자치구로 내려 보내면 구는 25일께 각 가정으로 직접 송금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8월 양육예산은 임시변통해서 가까스로 막았지만 국비지원이 없이는 9월 양육예산 지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남은 20일간 정부로부터 국비를 지원받지 않으면 9월 말 17개구가 양육예산을 지급하지 못하게 된다.
추경을 편성해 정부로부터 예비비 지원을 받은 강남이나 서초ㆍ종로 등도 상황이 나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구가 지급해온 양육수당은 서울시 지원비율이 50% 가까이 되기 때문에 한 두 달 정도로 구 자체예산으로 지급한다고 해도 연말까지 나머지 두 달이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부 자치구들이 추경을 통해 국비예산을 지원받았지만 서울시의 예산이 바닥나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 오면 두 달 이상 버티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형편이 나은 구로 분류되는 용산ㆍ양천ㆍ송파구 등도 연말까지 버티기는 힘들다. 한 개 구가 부담해야 할 양육예산은 매월 평균 5억원 규모다. 일부 구의 경우 지원대상 아동이 적어 2억~3억원 안팎인 곳도 있지만 구 예산규모를 따져볼 때 연말까지 남은 4개월 동안 총 8억~12억원을 감당해야 하는데 가능한 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최대한 10월까지는 지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11월부터는 그나마도 어렵다"고 말했다. 양천구는 뒤늦게 구비에 양육수당을 반영한 추경을 통해 9월 한 달은 지급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했다. 그러나 한 달 뒤인 10월에는 불투명하다. 양천구 관계자는 "간신히 부족한 예산은 채웠지만 매월 200여명씩 대상자가 늘고 있어 10월부터는 모자라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양육수당과 함께 무상보육의 두 축인 보육료는 편법을 쓰지 않고는 이미 9월분 지급이 어렵게 됐다. 성북구 등 일부 자치구는 이달 10일 결제하게 되는 보육료 일부(8월분)를 연체하게 될 처지에 놓였다. 이들 자치구는 지난달 양육수당과 어린이집에 지급하는 기본 보육료는 제대로 지급했지만 카드로 결제하는 보육료는 결제일인 이달 10일 예산 부족 때문에 연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서울시 전체적으로 10일 결제될 예정인 보육료는 총 350억원이나 된다. 서울시는 비상수단으로 보건복지부 등에 350억원을 대납해달라고 읍소하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매달 0~5세 양육비 325억원과 보육비 750억원(기본보육비 165억원 포함)을 합쳐 1,075억원을 무상보육비로 지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울시도 입이 타 들어가고 있다. 매일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 관련부처에 예산을 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번번히 좌절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복지부는 서울시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는 편이지만 예산을 다루는 기재부는 '우리도 예산이 없다'는 식으로만 나오고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는 무상보육 국고 지원 비율을 늘리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와 함께 추경을 전제로 한 1,355억원 예산 지원을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해야 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서울시가 추경을 약속하면 국비로 확보해놓고 있는 1,355억원을 내려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는 경기부진 여파로 세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채무를 더 이상 늘리는 것은 곤란하다며 맞서고 있다.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추경은 곧 지방채 등 새로운 빚을 내는 것을 뜻하는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이후 채무감축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