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탈북청소년, 돈보다 멘토가 필요하다

정길연 소설가


H는 열아홉 살에, E는 열일곱 살에 집을 떠났다. 가정불화와 전망 부재의 나날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C는 아예 집도 없이 장마당을 떠돌던 꽃제비였다. 어느 날 어릴 때 중국으로 떠나 소식이 끊긴 어머니에게서 처음으로 연락이 왔다. C는 그리움보다는 도대체 자식을 잊고 산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강을 건넜다. H·E·C의 무단가출은 이후 한국행으로 이어졌다. 자의나 권유에 의해서. 수수료를 노린 브로커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남한행은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됐음을 의미했다. 이들은 어렴풋이나마 따뜻한 동포애와 새로운 도전이 가능한 삶을 기대했다. 은밀히 유통되던 남한 드라마의 영향으로 물질의 풍요와 분방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H·E·C는 탈북민을 향한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자신들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미는 종교인이나 인권단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도나 단체의 활동상을 부각시키는 것이 우선인 듯했다.

혈혈단신 남쪽에 뚝 떨어진 자신들은 고아 아닌 고아였다. 우울증조차 사치였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까마득했다. 첩첩산중·오리무중이었다. '제발 누군가 길을 좀 알려줬으면' '한 번쯤 내 고향, 내 집, 내 부모에게 다녀올 수 있었으면'. 후회를 드러낼 수 없었다. 비웃음 섞인 면박이 돌아올 테니까.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기에 아직 어리고 서투르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이니까.

H·E·C처럼 '나 홀로' 탈북 청소년들이 의외로 많다. 몇 푼의 생활지원금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심리안정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 제공, 조언과 격려를 줄 수 있는 일대일 멘토 연결, 한 그릇의 '집밥'을 제공할 수 있는 '이모'들을 연결해주자.

바라건대, 자기만족이나 형식적인 적선이 아니기를. 집 떠난 내 이웃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현실이 버겁고 아픈 청춘들, 분단된 조국의 북쪽에서 태어난 이들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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