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 금융위기 정부정책 “딜레마”

◎시장논리 고집하다 실기땐 경제 파국/개입경우 통상마찰·특혜시비 불가피기아사태를 비롯한 금융대란이 눈앞에 닥친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기아에 이어 쌍용 등 최근 부도설이 나돌고 있는 기업이 하나만 더 무너진다면 우리경제는 끝장이라는 현실을 인식하면서도 원칙론만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이같은 대처를 하는 데는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다루는 방식과 결과가 우리경제 운용의 틀이 선진단계로 진입하느냐의 기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서게 되면 각종 통상마찰의 소지는 물론 특혜시비가 일어날 것이 뻔하다. 이 때문에 강경식 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이 시장원리에 의한 사태해결을 강력하게 고집하고 있다. 기아에 대한 금융지원재개는 전적으로 기아의 자구노력안을 평가한 뒤 채권은행단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것이 기본시각이다. 경제팀 리더들의 이같은 자세는 기업부도위기를 기업구조조정의 호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기아의 자구노력을 강조하는 정부내 분위기는 확고하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아를 국민기업으로 치켜세우면서 기아살리기 운동이 일각에서 벌어지자 기아의 자구노력 강도가 떨어지는 징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제일은행을 비롯한 기아채권은행에 대한 한은특융에 대해 일단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도 기아측 자구노력 약화와 관련이 있다. 정부는 사회운동단체의 기아살리기 운동이 달갑지 않다. 김인호 수석은 『경영상 문제가 누적되어 좌초한 기아를 무조건 살리라고 정부에 요구할 것이 아니라 경영상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금융과의 관계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단 오는 30일 채권은행단회의때까지 기아측의 자구노력을 짜낼 대로 짜내자는 것. 한 관계자는 『경영상 문제란 경영진의 과오, 회사내 부패구조,허술한 내부 및 외부 감시제도, 노조문제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급한 지원이 회사 경영상의 문제를 덮고 넘어갈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기아에 대한 채무보증을 현재로선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아래 즉각 통상마찰의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측은 금융시장 등 경제전반의 동향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특히 금융기관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때는 하시라도 필요한 조치를 취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급박하다. 지금은 시장논리를 따질 정상적 상황이 아닌 비정상적 상황이다. 시장논리를 고집하다 타이밍을 놓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내에서도 이같은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시간이 없다. 그사이 또다른 기업이 부도를 맞는다면 경제는 파국이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우원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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