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과거 한국의 수사기관으로 인해 불법 행위를 당했다면 우리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특히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국가배상법에서 정한 국가 간 상호 보증 의미와 요건을 처음으로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법원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한국계 일본인 허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일본에서 태어난 허씨는 지난 1973년 한국으로 넘어와 대학에 입학했다. 1975년 중앙정보부는 허씨를 영장 없이 연행한 뒤 각종 구타와 고문을 가해 받은 거짓 자백으로 허씨를 국가보안법상 간첩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1·2심은 징역 3년6월과 자격정지 3년6월형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자백 외에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06년 일본으로 귀화한 허씨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 규명 결정을 내리자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허씨에게 3,000만원을, 2심은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허씨가 대한민국 국민이었을 때 불법 행위가 발생한 점, 한국인이 일본 정부에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일본인도 우리 정부에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허씨에게도 국가배상법이 적용된다는 취지였다. 대법원도 "우리나라 국민이 일본에서 국가배상청구를 할 경우 청구가 인정될 것이 기대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본에서 우리 국민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가 인정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국가배상법이 정하는 상호보증이 있는 것"이라며 상고를 기각해 원심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