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환율쇼크 오나

엔화 이어 위안·유로화까지 약세
기업들 채산성 급속히 악화… 자칫 수출경기마저 꺾일 우려
갈길 먼 한국경제에 빨간불… 정부는 대책 못세우고 고민


일본 엔화에 이어 위안화·유로화 등 주요 교역국의 통화 가치가 원화 대비 약세를 보이면서 가뜩이나 갈 길이 먼 한국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다. 내수경기 회복이 더딘 가운데 그나마 경제를 받쳐주던 수출경기마저 채산성 악화로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 불안으로 인한 대외경제의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고민만 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제조업 중심의 전형적인 수출 주도형 경제다. 교역 상대국의 경기는 물론 환율 등 대외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환율은 정부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복병"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최근 '슈퍼 달러'로 상징되는 달러화 초강세 속에 엔화에 이어 위안화·유로화까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내수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환율 문제로 자칫 수출경기 마저 꺾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엔화에 이어 위안화 약세, 수출기업 '이중고'=엔저의 추세적 약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위안화까지 약세를 보이면서 국내 수출기업들에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5일 발표한 '중국 위안화 환율 상승 원인과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위안·달러는 지난 6월 초 달러당 6.13위안을 기록,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초 대비 1.22% 평가절하된 것으로 이후 박스권에서 움직이며 달러 대비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봉걸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와 중국의 경기둔화 등이 위안화 가치를 약세로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위안화 약세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국제무역연구원 조사 결과 올해 상반기 원화 가치절상과 위안화 절하가 맞물리면서 원·위안화 환율은 9.3% 절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위안화 대비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뛴 만큼 국내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이 나빠진 것이다. 똑같이 1,000원어치 물건을 중국에 팔았을 때 93원가량 손해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우리의 대중 무역 수출은 5월부터 4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다 석유화학·반도체 등 일부 품목이 선전하면서 9월 들어 5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이 선임 연구원은 "하반기에는 위안화 가치가 소폭 절상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지난해보다는 낮은 수준"이라며 "자동차와 철강·전자·석유화학 등 대중 수출이 감소하고 대중국 수출기업들의 채산성도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로존의 경기 부진, 달러 대비 유로화 약세 지속=최근 달러화가 미국 경기지표의 호조 및 양적 완화(QE) 종료 임박 등 통화 정책의 변화에 따라 초강세를 보이면서 유로화의 약세도 지속되고 있다. 유로존의 경기 회복이 다른 선진국보다 더디다는 점도 유로화의 주요 통화대비 상대적인 약세 흐름을 이끌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는 지난달 4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양적 완화에 준하는 통화 완화 정책을 발표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유로화는 5월8일 장중 유로당 1.3993 달러에서 지난달 30일에는 장중 1.2568달러까지 떨어진 상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국의 빠른 경기 회복과 양적 완화 종료에 따른 금리정책의 변화 등이 유로화의 약세를 이끌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정훈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박사는 "미국의 금리 인상 기대에 따른 달러화 강세 효과가 맞물려 이 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로화 약세에 따른 원·유로 환율의 하락은 대유럽연합(EU)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유럽은 우리나라 전체 무역의 15%를 담당하는 곳이다. 이는 미국(10%)과 일본(8%)을 뛰어넘는 규모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이날 LG경제연구원은 '달러 강세 이제 시작단계, 원고 계속되면 충격 배가 된다'는 보고서에서 "유로존의 계속된 경기부양으로 유로화가 약세를 보인 반면 원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3월25일 유로당 1,500원 가까이 치솟았던 원·유로 환율은 현재 1,34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반년 만에 10% 넘게 떨어진 것이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유로존과의 무역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는 만큼 원·유로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타격이 우려된다"며 "무역 결제액 중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엔화보다 커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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