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동안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다. 민생안정,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지역경제 활성화, 부동산 부양책, 금융산업개혁안 등을 발표했고 창조경제의 틀을 만드는 등 애를 많이 쓴 한 해였다. 하지만 많은 대책들이 과거 경제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탓에 충분한 대책이 못 됐고 정책 입안자들의 소신도 부족해 보였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선진경제권에서 중요하게 다뤄졌어야 할 신용정책(credit policy)이 거의 부재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선진경제권에서는 신용정책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못지않게 중요하다. 국내총생산(GDP)은 소득과 신용의 성장이 총수요로 연결되는 만큼 늘어난다. 개발도상국일 때는 소득 증가가 성장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선진경제에 진입하면 신용경제(credit based economy)가 더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신용은 금융기관 간 대출·신용으로 이뤄지는 금융신용(financial credit)과 가계·기업·정부 등 실수요자에게 제공되는 비금융신용(nonfinancial credit)으로 나눌 수 있다. 금융신용은 금융위기시 유동성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실물경제, 즉 GDP를 창출하는 데 직접 쓰이지 않는다. 반면 비금융신용은 총수요의 증가로 이어져 GDP 성장으로 쓰이는 신용이다. 2008년 같은 금융위기 때는 금융신용 확보가 중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금융신용의 유동성과 공급에 관한 정책이 통화정책보다 실물경제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 글로벌 금융체제는 속성상 신용이 공급되면 적정선에 머물지 못하고 자기능력보다 과도하게 레버리징하는 상태까지 가게 되면서 신용위기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사태 등 세계 각국에서 규모 차이는 있으나 신용공급 과열, 신용위기, 경제 침체 등 사이클을 겪게 된다. 이처럼 금융위기는 신용위기에서 오고 신용위기는 현 금융 체계상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위기 발생시 신용수요와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도 유효한 신용정책을 펼치지 못해 천문학적 규모의 통화완화정책을 썼음에도 시중에 공급한 통화량에 비해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경제회복세는 양적완화 규모에 비해 상당히 늦게 나타났다. 금융체계가 가장 발달한 미국도 적절한 신용정책을 내놓지 못했듯이 신용정책은 실물금융에 깊은 이해가 없으면 소신을 갖고 적시에 적절한 정책을 쓰기 어렵다.
신용은 수요보다는 공급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신용경색은 크게 두 가지 현상의 결과로 나타난다. 금융기관들의 기존대출이 부실화했을 때 새로운 신용공급을 기피하면서 나타나고 또 하나는 금융당국의 신용규제정책의 결과로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금융기관이 위축돼 신용경색이 생겼다. 당시 금융당국은 유동성을 풀지는 않고 가계부채증가율을 우려해 2011년 1차, 2012년에 2차로 금융기관들에 신용 및 대출 규제를 해 거꾸로 신용경색을 심화시켜 경제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신용정책 입안시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은 금물이고 절제된 통찰력이 필요하다. 모든 금융기관이 위축됐을 때 부채 증가율을 염려해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의 신규신용을 규제하면 경제를 더욱 얼어붙게 하고 금융기관이 장밋빛 전망으로 경쟁적으로 신용공급을 할 때는 반드시 과도하게까지 넘어가는 금융체계의 속성을 알고 제동을 걸 수 있는 절제되고 소신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한국도 '성장-고용창출- 소비증가-성장'으로 이어지는 과거의 단순 성장모델에서 벗어나 신용경제에 맞는 정책을 통화·재정정책과 병행해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