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5월 12일] 6·15와 10·4선언의 문제

유영옥(경기대 국제대학장·북한학)

최근 ‘6ㆍ15공동선언’ 추진과정에서 5억달러의 뒷돈거래가 있었다는 사실과 거액의 불법 대북송금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또 ‘10ㆍ4선언’은 국민적 합의 절차를 무시하고 대규모 경협사업 합의를 통한 대북 퍼주기를 했고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무실화(無實化) 책동에 이용 빌미를 제공했음이 드러났다. 남북 합의서 이행 따져봐야
지난 10년간 ‘국민의 정부’ 와 ‘참여 정부’가 펴왔던 대북 포용정책이나 평화번영정책이 현실적으로 이끌어낸 효과와 관련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어구(語句)로 상당히 비판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남북 간에는 2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6ㆍ15남북공동선언’이나 ‘10ㆍ4선언’이라는, 일견 괄목할 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또한 금강산관광객 193만여명, 개성관광객 11만여명 등의 가시적 성과와 함께 개성공단의 운영, 매년 10만여명에 이르는 남북 간 인적 왕래, 18억달러에 이르는 남북교역 등 과거 냉전시대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변화를 일궈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신정부 출범부터 이런 남북관계가 간헐적으로 뒤뚱거리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특히 ‘6ㆍ15남북공동선언’ 및 ‘10ㆍ4선언’의 이행 실천문제를 놓고 북한당국의 터무니없는 비난은 남북관계를 경색국면으로 이끌게 했다. 더욱이 북한은 이들 두 선언의 기본 정신인 상대방 체제에 대한 인정, 존중과 내정불간섭의 차원을 넘어서 대통령에 대한 거명 비난까지 들고 나옴으로써 그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표리부동성을 재확인시켜 줬다. 말이나 구호로는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공조를 하자고 주창하면서도 정작 그 상대인 우리에게 원색적인 비방과 중상을 일삼으면서 이런저런 변명과 구실을 대며 남북관계의 경색책임을 우리 측에게 전가하는 구태(舊態)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대북강경책을 구사하는 반북대결정책을 펴고 있다” “6ㆍ15공동선언 및 10ㆍ4선언을 백지화했다” “비핵개방 3000을 통해 우리를 압살하려 하고 있다” 등을 주소재로 하여 지속적으로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6ㆍ15공동선언’과 ‘10ㆍ4선언’에 대한 북측의 입장과 행태는 마치 정신병자처럼 매우 편차적이고 안하무인격이어서 이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시각은 이해의 차원을 넘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대중 정권에서 채택된 ‘6ㆍ15공동선언’은 그 추진과정에서 불법 대북송금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으며 ‘낮은 단계 연방제’ 등 북한의 통일전략 수용 및 국가정체성 훼손과 남남갈등 유발문제 등 여러 흠결을 내포했다. 더욱이 ‘김정일 답방’이나 ‘이산가족문제’ 등 북한 측의 실천의지가 매우 낮은 사항을 무리하게 포함시킴으로써 국내 보수 세력으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과 힐난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하에서 이끌어낸 ‘10ㆍ4선언’ 역시 임기 말 ‘대못박기식의 무리한 합의’라는 비난을 자초했고 특히 수십조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적 부담이 예상되는 사업을 ‘통치행위’임을 구실로 국회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합의함으로써 그 이행과 실천에 의구심을 갖게 했다. 바로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이 두 선언의 이행실천문제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최고지도자의 절대적 권위’와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선언대로 남북합의가 이행되고 실천된다면 북한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도 막대한 자금과 양질의 기술을 받아들여 선군 독재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전한반도의 공산화 혁명’을 달성할 수 있는 군비증강과 함께 대남분열을 획책할 수 있는 실익(實益)과 명분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 정부에서는 출범 이후부터 이들 선언에서 합의한 모든 사항을 존중한다는 연장선상에서 “언제 어디서나 그 이행실천문제를 격의 없이 협의할 용의가 있음”을 북측에 제의해 왔던 것이다. 국민적 합의바탕 구체적 협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은 우리 정부의 진의(眞意)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일방적 비난과 왜곡비방만을 자행함으로써 대화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가 하면 기본적인 예의조차도 지키지 않는 파행(跛行)성을 드러내 놓고 있다. 북한의 이런 입장과 행태는 평화적인 협상과 대화를 통해 “상생과 공영의 남북관계 발전”을 함께 일궈내려고 하는 우리 정부의 전향적이고 진지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에 다름이 없다. 정부는 올바른 남북관계정립을 위해 기본합의서 등 남북 간의 모든 합의는 존중하되 이행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행할 것과 수정할 것, 그리고 폐기할 것을 엄격히 따져본 후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협의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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