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프랑스의 교훈

프랑스가 어지럽다. ‘프랑스 병’으로 불리는 경직된 노동시장을 바로잡기 위한 최초고용계약(CPE)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큰 ‘시련’을 겪고 있다. CPE는 고용주가 26세 미만의 사원을 채용한 뒤, 2년 안에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해고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노동시장 유연화 법안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렇게 하면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해져 고용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노조와 학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취업도 어려운데 해고마저 쉽게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CPE 폭풍' 佛정부 진퇴양난 노조와 학생들은 지난달 28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10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프랑스 역사상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3ㆍ28시위’를 벌였다. 또 총파업을 병행해 철도와 버스가 절반 이상 멈춰 섰다. 지난달 30일에는 학생들이 주요도시의 철도와 도로를 점거해 대동맥을 마비시켰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사태수습을 위해 해고 가능한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해고시 이유를 설명하도록 의무화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마음을 돌려놓지는 못하고 있다. 노조와 학생들은 3ㆍ28에 이어 4일 다시 전국 규모의 ‘검은 화요일(Black Tuesday)’이 예고된 상태다. 노조와 학생들의 파업과 시위로 국민들은 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있으며 관광산업이 타격을 받는 등 경제에도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국민 63%가 CPE를 반대하며 젊은이들을 지지하고 있다. 여론이 외면하자 프랑스 정부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태에 빠졌다.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 CPE는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 프랑스는 한동안 개선되던 실업률이 올들어 다시 높아지면서 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올 1월 말 현재 실업률은 9.6%이며 25세 이하 청년들의 경우 실업률이 무려 22.8%나 된다. 거의 4명 가운데 1명은 놀고 있는 셈이다. 특히 25세 이하 도시 빈곤지역 청년들은 실업률이 40%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경우 현재의 복지 수준은 물론이고 프랑스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이 같은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개혁은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저항이 너무 거세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경제의 목줄을 죄는 형국이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된 것은 처음부터 ‘설득’이라는 어려운 길 대신 ‘힘’으로 밀어붙이는 쉬운 길을 택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해고가 쉬워지는 만큼 젊은이들을 안심시킬 충분한 공감대 형성 노력이 없었고 해고 이후 다시 현업으로 복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없었다. GDP의 4.4%를 실업자 재교육에 쏟아붓는 덴마크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시스템은 마련해놓고 시도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청년실업 해결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끝까지 CPE를 밀어붙일 힘은 없어 보인다. 프랑스의 개혁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는 CPE 도입 여부에 관계없이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합의안된 정책은 실패' 명심을 이제 와서 도입에 실패하면 아무 소득 없이 혼란과 분열만 야기한 셈이고 도입을 한다고 해도 당초 안에서 크게 후퇴해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CPE 사태는 준비가 안된 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우리나라도 고용사정이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태백’으로 대표되는 청년실업 문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해법은 역시 고용 유연성이다. 문제는 우리 역시 해고 대응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노동 유연성 확보를 위한 비정규직 확대법이 통과될 경우 노동계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프랑스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설득과 합의 없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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