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토강여유가 낳은 반값할인

요즘 유통업계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마케팅 용어를 꼽으라면 단연 '반값'이다. 대형마트 전단지에는 반값 돼지고기에 반값 참치, 반값 전복, 반값 광어까지 등장했다. 인터넷몰 상단에는 '최고 50% 할인'이라는 표시가 일상적으로 반짝거린다. 반값까지는 아니더라도 '10년 전 가격으로 드립니다' 등 연중 행사 수준의 할인 행사가 넘쳐난다.

새로 출범한 정부가 물가 안정을 명목으로 유통업체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자 관련 업체들 역시 '소비자들을 위해' '정부 정책에 발 맞추기 위해' 가격을 내린다고 서슴없이 표현하며 경쟁적으로 가격 할인에 나서고 있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유통업체들의 영업이익이 줄어들거나 더 나아가 영업손실까지 보는 상황에서 이 같은 할인을 연중 진행한다면 손해가 막심할 텐데 유통업체들은 지금 제 살을 깎아먹고 있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반값 할인은 정부와 유통업체, 유통업체와 납품업체의 토강여유(吐剛茹柔) 관계가 낳은 결과물일 뿐이다. 최근 대형마트를 찾은 한 중소업체 사장은 진열대에 놓인 자사 제품의 가격표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까지 제품 포장 등을 리뉴얼하는 데 많이 투자했다"며 "많이 팔린들 이 가격에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는 것.

정부가 대형 유통업체들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듯이 유통업체들은 생산자ㆍ중간납품업체 등에 고통 분담을 당당히 요구한다. 가격 할인에는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가 뒤따른다. 그리고 가장 큰 희생은 목소리가 가장 작은 자의 몫이다. 상생이라는 말로 포장될 뿐이다.

27일 대한상공회의소에는 유통업계의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백화점ㆍ대형마트ㆍ편의점ㆍ전통시장 등 좀처럼 모이기 힘든 유통채널의 최고 책임자들이 모인 이유는 유통산업연합회를 출범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자율협의체'임을 강조하며 유통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진정한 유통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대표님들께 부탁 드리고 싶다. 부디 강자 앞에서 강하고, 약자 앞에서 약해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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