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경제 안팎으로 위기 빠졌는데… 韓銀, 강건너 불구경? 물가 폭등·환율요동·유동성 팽창 불구 "위기대처案 못내놓고 묵묵부답" 눈총유가전망도 번번이 빗나가 신뢰 추락…"역할 비해 기대감 너무 커" 옹호론도 홍준석 기자 jshong@sed.co.kr "나라 경제가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한국은행은 어디에 있는가." 물가폭등, 경기침체, 환율 급변동, 유동성 팽창 등 모든 경제지표에서 비상등이 깜빡이고 있지만 한은이 위기대처 방안을 내놓기는커녕 아예 존재감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지나치게 조용하기 때문에 나오는 질타의 목소리다. 한은이 폭등하는 물가에 소방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올 들어 정부의 성장론에 맞서 금리를 내리지 않고 버틴 점에 대해서는 한은 안팎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번번이 유가 전망이 어긋나면서 외환위기 수준으로 물가가 치솟는 와중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고 있는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이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수세적 입장이었던 데다 정책을 단기 위주보다 중장기 시야로 대응하고자 했고 이런 와중에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하 교수는 이어 "성장 위주의 정부 논리를 의식해 한은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들리는 등 한은의 물가안정 의지에 의심이 생기고 있다"며 "당장 금리를 인상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도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비난 여론에 대해 한은 역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안에서도 경제위기에 한은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해법안 마련에 노력하고 있지만 핵심이 유가 등 외부요인이어서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성태 총재가 최근 금리인상 외에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지시했지만 크게 도움이 될 만한 카드가 없다는 게 한은 내부의 솔직한 판단이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의 지급준비율 인상과 중소기업 총액한도대출 축소, 대출 창구지도 방안 등을 검토하고는 있지만 지준율 인상은 은행의 수익성 악화와 비은행권과의 형평성, 시중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이자 부담 등이 걸리고 총액한도대출 축소는 효과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환율정책에서도 언제부터인지 한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지난 3월 말 이 총재가 외부강연에서 환율 발언을 했다가 청와대에서 재정부와 충돌하는 모습이 좋지 않다는 경고를 들은데다 4월 중순 기획재정부 쪽에서 환율정책을 한은에 맡긴 적이 없다는 발언이 나온 뒤 환율 시각을 표명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해명했다. 재정부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환율정책에서 발을 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 유동성이 넘치지만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하고 있는 점이나 지난해 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장의 심각성을 간파하지 못한 점, 유가ㆍ물가ㆍ성장률 등 모든 전망치가 한은답지 않게 크게 빗나간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한은의 전망치가 과거에 비해 권위가 떨어진 것 같다"며 "막강한 조사기능을 갖고 있으므로 더 정확히 분석해서 올바른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역할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은의 기대치가 너무 크다는 옹호론도 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비교해 한은에 대한 기대가 너무 과대한 측면이 있다"며 "그나마 성장주도하에서 경제안정을 위해 중심 잡는 것만도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