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오픈사이언스 시대, 과학기술 영토 전 세계로 넓혀라

기초과학 성과 공유로 혁신 창출
기술도입 위한 선진국 공조 체계서 동유럽·러시아 등 전세계로 확대
클러스터 단위 협력 시스템 구축을



지난 10월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세계과학정상회의 화두는 오픈사이언스였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오픈이노베이션의 개념이 과학계로까지 확대된 모습이다. 오픈사이언스는 공적 연구비가 투입된 기초과학 성과의 공유와 개방을 통해 혁신창출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최근에는 오픈사이언스의 개념이 전 지구적 협력을 통해 기후변화·전염병 등 글로벌 도전과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해나가자는 개념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달 필자는 중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프라하 카렐대를 방문했다. 체코·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 등 비셰그라드 그룹 4개국(V4)과 본격적인 과학기술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들 4개국 인구의 합은 우리나라보다 많은 6,400만명이지만 전체 국내총생산(GDP)은 우리의 절반 수준인 약 9,000억달러 규모로 크지 않은 경제권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노벨상 수상자를 무려 21명이나 배출한 전통적 기초과학 강국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이미 수많은 나라와 활발한 연구협력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이 강점을 갖는 원천·응용·상용화기술에 이들 비셰그라드 국가들의 기초과학 역량이 합쳐진다면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 기대된다.


최근 우리 주력산업의 경고등이 꺼질 줄을 모른다. 제조업 매출 증가율이 사상 처음 감소했고 올 11월까지의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나 감소했다. 당면한 저성장 경제기조 속에서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성장동력 확보는 결국 과학기술에 기댈 수밖에 없다. 우리의 과학기술 역량만으로 한계가 있다면 과학기술 영토 확장을 통해 전 세계의 지식과 역량을 적극 활용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가별로 보유한 과학기술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과거 우리나라는 선진 기술도입을 목적으로 미국·일본·서부유럽 등 전통 선진국 중심의 협력에 중점을 둬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그 범위를 전 지구 차원으로 넓혀가야 한다. 예를 들어 기초과학 수준이 높은 동유럽과 러시아, 우수한 정보기술(IT) 인재가 넘치는 인도, 과학굴기로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이뤄지는 중국 등 국가·분야별 강점과 역량에 기반한 글로벌 오픈사이언스 전략이 필요하다.

또 글로벌 과학기술 협력은 대학·연구소·기업 등 개별주체를 넘어 권역의 산학연을 결집한 클러스터 중심으로 확장해나가야 한다. 인재·인프라·자본 등 혁신창출을 위한 제도·환경이 갖춰진 클러스터는 연구협력뿐 아니라 인력 교류, 혁신기업 유치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핀란드 울루나 스웨덴의 시스타 클러스터와 우리나라의 홍릉·대덕 연구단지와 공동으로 협력주제 발굴, 인프라 공동활용, 인력교류 등 보다 광범위한 협력을 추진한다면 시너지가 막대할 것이다. 또 이러한 협력을 통해 현지에 특화된 기술개발이 이뤄진다면 우리 기업의 시장진출 기회 또한 확대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다 효과적인 협력을 위해 연구와 인재양성이 연계된 협력전략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역량이 제대로 체화되기 위해서는 결국 교육을 통한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인재양성은 국가 간 단순 기술협력보다 장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보합대화(保合大和)라는 말이 있다. 한마음을 가지면 더 큰 의미의 대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도 과학기술계의 글로벌 개방과 협력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다. 더 이상 개별 국가만의 힘으로는 세계를 이끌 혁신을 만들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곧 50주년을 앞둔 우리 과학기술은 다음 반세기 진정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견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인재와 문화·연구방식·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우리를 개방하는 데 마음을 모아야 한다.


이병권 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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