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통령 대박, 전략 대신 진정성만 있었죠

'뽀로로 아빠' 김일호 오콘 대표 한국창업진흥협회 창업콘서트
'아이에 해 되지 않는 작품 만들자'
부모 마음으로 만든 뽀로로 히트
창업 성공, 경쟁 아닌 진정성 달려

김일호 오콘 대표

어린이들의 대통령 뽀로로. 추산 브랜드 가치가 4,000억원에 이르고 현재 애니메이션 콘텐츠 및 캐릭터 상품 관련 국내종사자만 줄잡아 3만명이 넘는다. 전 세계 130개국에서 방영되며 문화를 불문하고 다양한 민족 어린이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 하지만 뽀로로가 탄생한 2000~2003년 당시 치밀한 전략 같은 것은 없었다. 캐릭터 디자인과 제작을 맡아 '뽀로로 아빠'로 불리는 김일호(47·사진) 오콘 대표는 우리 아이들이 볼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진정성만을 갖고 뽀로로를 제작했을 뿐 사실상 지금의 성공은 소 뒷걸음질과 다름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최근 한국창업진흥협회가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연 '창업콘서트'에서 "사업전략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며 "창업의 성공은 경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과의 진실게임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뽀로로를 창작할 당시 김 대표와 오콘 제작진들이 캐릭터 설정과 제작방향을 놓고 수십차례 회의를 거쳐 내린 결론은 부모 마음에 충실히 따라 만들자는 것. 당시 김 대표를 비롯해 오콘 직원들도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었다. 그는 "자라나는 아이들 가슴과 머리에 흠을 남기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지배했다"며 "좀 더 튀고 차별화된 캐릭터와 스토리를 원하는 투자자들에게 느리고 평범하게 생긴 펭귄을 내놓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닮은 주인공들의 모습과 일상의 얘기들을 담은 시나리오가 초당 24프레임인 보통 영상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프레임으로 어른의 눈엔 답답하기까지 한 애니메이션에서 펼쳐진다. 주제도 강요하지 않는다. 친구와 싸우지 말라는 식의 일방적 교훈 전달이 아니라 '싸우고 나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라는 눈높이 맞춤식 스토리다. 이른바 '뺄셈'의 미학이다. 그는 "좋을 것을 주려고 쥐어짜는 것을 그만두고 주고 싶지 않은 것을 빼는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인생도 '뺄셈'으로 엮어졌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하고 1990년대 국내 굴지의 대기업 디자인연구소에서 일하던 중 담배를 피우다 문뜩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에 그날로 잘 다니던 직장에서 뛰쳐나왔다. 당시 퇴직금 300만원으로 고가 PC를 구입해 광고영상 편집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IMF 외환위기가 터진 후 하루아침에 일감이 사라지자 자신이 주도하지 않는 일은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젠 소비자들이 좋은 콘텐츠를 보고 마음에 담아두면 그것이 곧 브랜드가 되는 세상"이라며 "애니메이션도 브랜드를 만드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애니메이션처럼 창작·창조적 사업을 하는 조직은 대기업처럼 일사분란 할 수 없다. 그는 "애니메이션 회사는 태생적으로 감성과 논리가 대치하면서도 상생해야 하는 조직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보통 기업을 시스템화하는 것은 기존의 성공모델을 카피하려는 욕심 때문이지만 창작 산업은 결코 성공이 카피되지 않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100명이 같은 일을 동시에 시작했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모두 떠나고 자신만 남았음이 곧 성공이라는 지인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중할 때만은 가장 진실하고 행복하다"며 "그것이 버티는 힘이며 성공의 고리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현욱기자 h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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