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6월30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자연사박물관. 영국과학진흥협회의 정례 토론회에 청중 300여명이 몰려들었다. 토론주제가 진화론이었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 출간 이후 6개월 만에 열린 공개토론. 신문지상을 통해 찬반 논쟁을 벌이던 논객들의 토론회는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포문은 옥스퍼드교구 주교인 윌버포스가 열었다. 감성에 호소하는 듯한 발언이었지만 청중은 윌버포스 주교의 언변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얻은 주교는 진화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댁들의 조상 중에 원숭이가 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그 원숭이가 할아버지 쪽입니까, 할머니 쪽입니까?' 바로 그 순간, 동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고 전해진다. '하나님이 저 양반을 내게 넘겨주셨군.' 자리에서 일어난 헉슬리는 주교의 조롱을 맞받아쳤다. '내 조상이 원숭이라는 사실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다만 주교님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과 혈연관계라는 점이 부끄럽습니다.' 토론장 곳곳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지고 창조론을 믿는 한 여성은 놀란 나머지 졸도해버렸다. 치열한 논쟁이 오간 토론회가 끝난 뒤 양측은 서로 승리했다고 여겼지만 진화론은 헉슬리를 스타로 만들며 급속히 퍼졌다. 막상 '종의 기원'을 지은 찰스 다윈은 몸이 아파 불참한 이날의 토론은 '창조-진화 논쟁'의 서막이었다. 창조론은 창조과학ㆍ지적설계론으로 발전하고 진화론도 '진화론 자체가 일부 철학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서로 발전하고 있다. 옥스퍼드 논쟁을 통해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헉슬리는 뛰어난 후손도 남겼다. 유네스코 초대 사무국장을 지낸 생물학자 줄리언과 '멋진 신세계'의 저자인 올더스, 196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생리학자 앤드루가 그의 후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