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저계급론'에 회의를 품던 서울대생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쳤다. 그는 "힘들고 부끄러운 20년이었다"면서 "저를 힘들게 만든 것은 이 사회며 저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제 자신"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경제적 사고의 소산이라면서 자기를 힘들게 만든 것은 이 사회와 이를 구성하는 '남은 사람들'이라고 지목했다. 이어 그는 "먼저 태어난 자,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세상에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면서 "정신적 귀족으로의 자신이 수저 색깔에 따라 생존이 결정되는 현실을 떠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얼마 전에는 연세대 앞에서 벌어진 1인 시위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부자 부모를 찾는다'는 피켓을 들고 마스크를 쓴 채 대학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연대생이다. 그는 "집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비대한 등록금이 짐이 돼 휴학을 하게 됐다"면서 "철학과 문학 등 학문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은 자신이 왜 수업료를 내며 교육을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넘어설 수 없는 벽인 '계급'에 가로막혀 좌절한 이 시대 청춘의 자화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계급 갈등이 세대 갈등으로 확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 언론사 논설위원이 늙는다는 것은 벌이 아니라며 기성세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을 썼다가 20~30대로부터 지탄을 받을 정도로 세대 갈등은 생존권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기득권으로 대변되는 베이비붐 세대와 저성장의 덫에 갇혀 희망을 찾지 못하는 20대가 날카로운 대척점에 놓인 셈이다. 요즘처럼 세대 논쟁이 치열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노소(老小) 갈등이 용암처럼 분출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본 베이비붐 세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보면 20대 청춘은 물론 30~40대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세상이 엿보인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대학만 졸업하면 미래가 보장될 뿐 아니라 정년 보장과 연공서열도 당연한 권리였다. 산업화 정책과 맞물려 고성장·고금리 시대에 살면서 직장을 얻기도 쉬웠고 집 장만도 어렵지 않았다. 취업 준비 중인 한 후배는 "50대는 대한민국의 성장기를 틈타 가장 쉽게 부와 권력을 획득했으며 이제는 모든 기득권을 독차지한 채 후배 앞에 놓인 각종 사다리를 걷어찬다"고 비난했다.
앞으로 펼쳐질 저성장 시대에는 자원이 한정된 만큼 이를 둘러싼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은 더욱 격화할 것이다. 그렇다고 수저계급론에 실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처럼 좌절과 포기밖에 답이 없는 것일까. 신간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낸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지금 청년세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의 아픔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의 탓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성세대를 향해 '당신들 책임이다. 그러니 바꾸자'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원죄를 안고 있는 기성세대조차 청년들에게 분노하고 행동하라고 주문한다. 청춘은 시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이다. 그리고 시대의 중요한 변화는 청춘들이 분노를 폭발하면서 견인됐다. 4·19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 등 역사의 나침반을 돌려세운 사건들은 '청춘들의 분노'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선거 국면이다. 선거는 기존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분노가 그 자리에서 멈추면 분노해야 할 이유조차 망각하기 쉬운 법이다. 분노하고 연대하며 행동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 청년들이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분노를 무기로 마침내 이 세상을 변화시켜내기를 뜨겁게 응원한다.
정민정 성장기업부 차장 jmin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