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근에 자리한 특급호텔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 지난 24일 밤 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DDP 개관을 기념해 열린 서울패션위크 관계자들이 모여 대규모 비즈니스 파티를 열었다. 그랜드볼룸의 한 면을 가득 채운 최첨단 미디어월이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와 바이어 등 패션업계 종사자, 연예인들이 모인 파티장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가로 17m, 세로 4.8m의 초대형 미디어월을 통해 소개된 화려한 영상들은 한국 패션산업의 위상과 세계적인 IT도시로 꼽히는 서울의 밤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JW메리어트 동대문은 호텔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미디어월에 삼성전자의 최신 UHD TV를 사용해 2월 개관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다. JW메리어트 동대문의 서지영 마케팅팀장은 "미디어월에는 55형 TV가 98대나 사용됐으며 정밀한 영상과 이미지 재생이 가능하다"며 "미디어월을 이용해 행사 종류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맞춤식으로 연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날 파티 이후 패션쇼 등 다양한 행사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호텔시장에 갓 데뷔한 새내기 호텔의 최신 시설을 바라보는 기존 호텔들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최신 유행과 신상품을 선호하는 소비자 특성상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새 호텔에 대해 호기심을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화문 일대와 용산·마포 등지에도 신규 호텔 입성이 이미 줄줄이 예고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늘면서 호텔 수요가 커지고 있지만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면서 레드오션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물론 지난해 재개관한 서울 신라호텔이나 최근 새 단장을 마친 그랜드인터컨티넨탈처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노후한 객실과 부대시설을 과감하게 업그레이드시켜 최신 호텔과 정면 대결에 나서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경제·시간적 비용을 고려할 때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은 365일 영업하는 호텔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 때문에 호텔마다 앞다퉈 차별화된 경쟁력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존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개발해 소비자의 관심을 끌겠다는 얘기다.
이색 이벤트와 감성 마케팅, 트렌드를 담은 투숙 패키지 출시 등이 좋은 예다.
서울광장 앞에 위치한 특급호텔 '더플라자'는 29일 호텔 로비 카페에서 베스트셀러 '언니의 독설'의 저자인 김미경씨와 함께하는 북콘서트를 연다. 북콘서트에 초대된 관객들은 호텔의 봄 패키지 이용 투숙객 중 콘서트 참석을 신청한 선착순 30명으로 한정된다. 소수 이용객에게만 유명 인사와 질의응답 시간, 사진 촬영, 토론 등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벤트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더플라자 관계자는 "호텔 라운지 카페를 북콘서트 장소로 활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호텔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며 "이번 교보문고와의 제휴 사례처럼 앞으로 다양한 문화·예술업체와 손을 잡고 호텔의 여러 공간을 십분 활용하는 감성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더플라자는 다음달 말에는 방송인 출신 여행작가 손미나씨를 북콘서트 저자로 섭외했으며 5월 말에도 또 다른 유명 작가를 물색해 북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호텔에 문학의 향기를 입힌 곳은 더플라자뿐만이 아니다. 조선호텔은 지난 설 연휴 당시 호텔 2층에 '힐링 모먼트 라운지'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쇼팽과 관련된 피아노 클래식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출판사 문학동네와 함께 미니 도서관을 운영했다.
조선호텔의 한 관계자는 "명절 휴식을 위해 호텔을 찾았던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며 "고객들이 단지 숙박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여유도 만끽할 수 있는 유사 이벤트를 많이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심형 리조트호텔인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호텔 외부의 넓은 공간은 물론 호텔을 둘러싸고 있는 남산의 자연까지 손님몰이에 활용하기로 했다.
반얀트리는 다음달부터 매월 1회씩 호텔 앞에 이색 야외 장터를 꾸며 소비자를 남산 중턱에 위치한 호텔로 향하게 할 계획이다. 행사명은 '장(Jang)'. 다음달 19일 처음으로 열리는 야외 행사에는 라이프스타일 관련 브랜드 12곳이 참여해 각각의 부스에서 지역 특산물, 건강식품, 아동 의류, 자연주의 화장품, 반려동물 용품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장터 한 쪽에서는 호텔 셰프들이 즉석에서 요리한 음식들을 판매한다.
반얀트리 관계자는 "7만㎡에 달하는 넓은 부지의 활용도를 높이는 한편 멤버십 회원·비회원 모두에게 새로운 서비스 경험과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며 "정기적으로 야외 마켓을 열어 사람들이 호텔 주변 남산의 자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호텔들의 차별화 노력은 공간 재활용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리츠칼튼 서울'은 올해부터 각 식음료장의 총괄셰프가 주도하는 쿠킹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리츠칼튼 관계자는 "요리에 대한 소비자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며 "호텔 요리를 맛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셰프에게 직접 요리를 배워 식탁에서 재현하려고 하는 '경험'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호텔 측은 기존 전문인력을 이용해 새로운 마케팅에 나섰다. 일식당 하나조노의 표길택 총괄셰프는 '일본식 가정요리'를, 중식당 취홍의 조경식 총괄셰프는 '입맛 돋우는 건강한 중국요리'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8~10인 정도의 소수 정원 클래스로 운영되기 때문에 클래스를 오픈하면 곧바로 몇 시간 안에 마감되고 대기자까지 발생할 만큼 반응이 뜨겁다. 리츠칼튼은 날씨가 좋아지는 대로 실내 조리시설이 아닌 야외 정원에서 피크닉·캠핑 요리 관련 강좌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호텔업계의 한 관계자는 "호텔업은 최신 시설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마음을 읽는 능력과 서비스의 질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며 "수십년간 영업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와 트렌드를 읽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면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주목 받는 호텔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