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이 고쳐야 할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치열한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업가정신과 투자라는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 역시 기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기업들의 도전정신을 저해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현명관(72ㆍ사진) 사단법인 '창조와혁신' 상임대표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창조와혁신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기업가정신과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고취해 경제위기 극복의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 출범한 창조와혁신을 이끌고 있는 현 대표는 기업 현장과 경제단체에서 쌓은 풍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업과 정부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현 대표는 우선 대기업들이 그간 관행적으로 잘못해왔던 부분들을 고쳐야 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제가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의 행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솔직히 대기업의 행태 중 고칠 것들이 많습니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오너 2세의 실질적 재산상속이라든지 중소기업의 인력과 기술을 부당하게 가로채는 행위, 일부 재벌 2ㆍ3세들의 사회적 비난을 받는 행동 등을 고쳐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경기침체기에 실질적으로 대규모 시설투자와 고용에 나설 여력을 가진 곳은 대기업밖에 없는 만큼 반기업적 정책과 정서로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을 저해하는 '교각살우'의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게 현 대표의 시각이다. 그는 "정책은 선택이며 환경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져야 하는데 지금 같은 장기 침체기에는 기업가정신과 투자의욕을 고취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면서 "그런 면에서 현재 거론되는 경제정책들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운을 뗐다.
현 대표는 특히 과거 왕성했던 기업가정신을 되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기업가정신이 밑바탕이 돼야 투자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녀 교육을 희생하며 해외 마케팅과 시장개척에 전념하는 기업인들이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이런 기업인들이 우리를 대신해 글로벌 경제전쟁에 뛰어든 전사라는 사회적 시각과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기업인들은 마치 죄인처럼 취급 받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현 대표는 또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른 주주중시 경영이 기업인들의 과감한 도전정신을 꺾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외환위기 전에는 기업인들이 전세계에서 가장 왕성한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위험을 감수하며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다"면서 "하지만 외환위기 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목으로 이익과 배당을 중시하는 경영문화가 정착되면서 5~10년 후의 장기적인 효과를 내다보는 과감한 투자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집단소송 요건이 완화되고 경제민주화까지 더해져 기업의 투자의욕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면서 "10년 후를 내다본 대규모 투자로 기업을 일으킨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현재에 있었다면 소액주주들에 의해 배임죄로 처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 대표는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껏 해봐라' 하며 발목을 잡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규제가 많은 곳도 없습니다. 정부 부처에 과가 하나 생기면 관련 규제만 열 가지가 새로 생길 정도입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규제들이 없어져야 합니다."
현 대표는 기업들의 무사안일에 대한 걱정이 컸다. 현재의 성과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앞으로 기업을 먹여 살릴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당부이다. "우리의 주력산업인 반도체ㆍ스마트폰ㆍ자동차ㆍ조선ㆍ철강이 얼마나 경쟁력을 유지할까요. 아마 오래 못 간다고 봅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영원히 글로벌 선두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영원한 강자가 없다는 것은 세계 역사가 증명합니다. 세계 시장에서 기득권자와 싸워 새로운 먹거리를 찾으려면 적어도 10년간의 연구개발과 마케팅 노력이 필요한 만큼 기업들은 신성장동력 발굴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현 대표는 미래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대통령의 적극적인 역할도 주문했다. 그는 "기업이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도록 각종 규제를 풀고 격려를 해주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라면서 "대통령은 혹 오해를 받을까 하는 생각에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업이 미래 먹거리 품목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하면 대통령도 온 힘을 다해 돕겠다고 하면 기업들이 신사업 발굴에 더욱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대표는 특히 우리 기업들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산업을 꼽았다. 그는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서비스 산업 육성이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관광ㆍ의료ㆍ유통ㆍ법률 등 서비스 분야에서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삼성전자도 스마트폰 등 제조업은 잘하지만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애플에 뒤지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현 대표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 화두인 '창조경제'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이 시대 창조경제의 핵심은 과거 산업화 시대 제조업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복합화와 융합화를 통해 새로운 길로 나가자는 것"이라면서 "구체적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조업과 서비스업, 문화와 예술 등의 융합을 통해 선진경제의 기반을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창조경제는 복선적인 경제체제인데 우리의 법규와 규제는 과거 고도성장 시대의 단선적 차원에 맞춰져 있다"면서 "규제혁파가 없으면 산업의 진정한 복합화ㆍ융합화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무엇이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인지 물었다. 이에 현 대표는 한국형 오너경영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정부가 기업에 일률적인 지배구조를 강요하기보다는 각 기업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력이며 지배구조는 그를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어느 기업에나 통용되는 지배구조가 있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업종이나 문화가 다른 각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기 위한 최적의 지배구조가 무엇인지를 논의해야 합니다. 같은 기업이라도 국내 시장에 머무를 때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때 등 시대에 따라 적합한 지배구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인들을 무시하고 지배구조 측면에서 미국식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틀린 얘기입니다."
현 대표는 과거 이건희 삼성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화를 통해 한국형 오너경영의 장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했을 당시 새벽 1ㆍ2시면 이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잠을 자다가 깨서 전화를 받고는 했다"며 "비서실장이 잠을 자는 시간에도 오너는 항상 깨어 있으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오너와 전문경영인은 주인의식에서 큰 차이가 있으며 동일한 조건이라면 오너경영의 장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현 대표는 "문제는 능력이 부족한 2ㆍ3세들이 기업 경영권을 승계 받으면서 생기는 것"이라며 "객관적 능력이 아닌 자신의 운명에 의해 기업을 승계 받는다면 사회적 박탈감에 따른 비난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대기업 오너들이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밖에 현 대표는 대ㆍ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정부와 대기업의 인식변화도 요구했다. 그는 "대기업은 중소기업 지원을 시혜적인 입장에서 보지 말고 자신의 제품 및 서비스에 관련된 중소기업을 강소기업으로 키울 고유의 책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정부도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 중소기업과의 격차를 줄이려 하지 말고 대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협력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같이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He is… ▲1941년 제주 ▲1959년 서울고 ▲1963년 서울대 법학과 ▲1974년 일본 게이오대 경제학석사 ▲1965년 행정고시 4회 ▲1968년 감사원 부감사관 ▲1989년 호텔신라 대표이사 부사장 ▲1991년 삼성시계 대표이사 사장 ▲1993년 삼성종합건설 대표이사 사장 ▲1993년 삼성그룹 비서실장 ▲1996년 삼성물산 총괄대표이사 부회장 ▲2001년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2003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2005년 삼성물산 회장 ▲2012년 박근혜 후보 대선 경선 캠프 정책위원 ▲2013년 사단법인 창조와혁신 상임대표 |
■ 창조와혁신은 "젊은이들의 취업과 창업이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과거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시니어들이 청년들을 미래 인재로 육성하는 멘토 역할을 하면서 재능과 경력을 기부하는 단체를 만들게 됐습니다." 삼성물산 회장을 지낸 현명관 대표는 지난 4월 사단법인 '창조와혁신'을 설립해 상임대표를 맡게 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창조와혁신에는 현 대표 외에도 우리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박내회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맵대 총장 등이 공동대표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고문을 맡고 있다. "우리같이 은퇴한 사람들은 부모와 국가ㆍ기업 등 사회로부터 엄청난 투자를 받았는데 은퇴 후 해외여행을 가거나 골프를 치면서 무위도식해도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지식과 경험을 자라나는 젊은 세대를 위해 쓰는 게 우리의 사명이자 책무입니다. 박 전 총재와 이 이사장 등을 만나 새로운 보람을 찾아 일해보자고 얘기했더니 흔쾌히 응하더군요." 창조와혁신이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것이다. 현 대표는 "현재 경제의 핵심 키워드는 일자리 창출로 일자리는 국가가 아닌 기업들이 만드는 것"이라면서 "기업에서 수십 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국내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업과 청년 구직자 간에 가교가 돼주고 멘토 역할도 하며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창조와혁신은 한국형 경영모델을 만드는 데도 주력할 방침이다. "외환위기 이후 15년이 지났는데 우리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잠재성장률은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한국적 경영모델이 필요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미명 아래 한국적 모델이 사라졌습니다. 국가든 기업이든 한국적 특징이 없으면 경쟁력이 없는 만큼 우리 경쟁력의 모태가 될 한국형 경영모델을 정립해나갈 계획입니다." 아울러 창조와혁신은 기업 출신 회원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의 마케팅과 해외시장 진출 등도 지원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