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한국을 방문한 우샤오후이 중국 안방보험 회장은 최근 인수한 동양생명 임원회의까지 미룬 채 삼성전자 서울 서초동 사옥을 찾아 이재용 부회장과 2시간 동안 회동하며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중국 21세기경제보는 "안방의 자금력과 삼성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전망했다. 21세기경제보의 분석은 최근 한국에 대한 중국 기업의 시선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중국 자본의 잇따른 한국 기업 인수합병(M&A)은 6%대 성장(保六·바오류)을 공식화한 시진핑 정부의 '경제체질 변화'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과잉생산으로 허덕이는 석탄·철강·석유화학 등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첨단 정보기술(IT)·서비스 산업 위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는 것. 단순한 시장을 넘어 첨단기술 및 서비스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가진 노하우를 중국 기업에 접목하면 단기간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조1,319억원을 들여 동양생명을 인수한 안방보험이 일각에서 제기된 지나친 공격경영 우려를 일축하며 "글로벌 시장 확대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 것도 이 같은 포석으로 보인다. 안방보험의 시선은 한국 시장 진출을 넘어 동양생명의 노하우 습득을 통한 글로벌 시장으로 향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중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가장 눈독을 들이는 곳은 게임 업계다. 세계 최대 게임사로 성장한 텐센트(텅쉰)는 넷마블게임즈(25%)와 네시삼십삼분(24%), 파티게임즈(14%) 등 50개 이상의 국내 게임사에 투자했다. 17일에는 퇴출 위기에 빠진 코스닥 게임업체 용현BM이 중국 룽투게임스에 인수됐다.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게임산업이 중국 자본의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분야에서도 중국 자본들이 대기업 협력업체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8일 중국 화장품 업체 에스테틱이 LCD 검사장비 업체 넥스트아이를 인수했고 양광그룹은 TV모니터 제조업체인 티브이로드를 사들였다. 중국 신세기그룹 자회사인 상하이유펑인베스먼트는 168억원에 차량용 블랙박스 국내 2위 업체인 미동전자통신을 인수했다.
중국의 한국 기업 인수에 대해 투자은행들은 '손쉬운 기술 경쟁력 확보'가 목적이라고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자본의 한국 기업 투자는 국내 기업의 기술과 노하우를 단기간에 확보하려는 목적이 크다"며 "기술력에 비해 저렴한 것도 한국 기업에 중국 자본이 몰리는 이유"라고 평가했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이 눈독을 들이는 분야는 반도체를 포함해 기술력 있는 정보통신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한국 기업 인수를 확대하면서 중국 기업들과 경쟁하는 중견·소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김현수특파원 hs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