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스트리트'는 탐욕의 늪에 허우적대는 월가의 금융인 군상을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탐욕은 선(善)이며, 미국이라는 고장난 기업도 고칠 수 있다"는 마이클 더글러스(고든 게코 역) 외침은 돈을 좇는 월가의 속성을 대변한다.
뉴욕 월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법조타운에는 흔히 뉴욕 검찰로 불리는 뉴욕 남부지구 연방검찰청이 자리잡고 있다. 93개의 연방 검찰청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조직인 이곳은 월가의 금융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200명이 넘는 검사가 활동하는 이곳은 공정한 금융거래 질서 확립은 테러 방지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업무다. 지난해 미국 역사상 최대 내부자거래로 기록된 라즈 라자라트남 사건의 전모는 이곳에서 파헤쳐졌다. 뉴욕 마피아와 반 부패 전쟁을 치른 루디 줄리아니 뉴욕시장도 이곳 검사장 출신이다. 영화 '월스트리트'는 뉴욕 검찰이 지난 1980년대 정크본드 제왕으로 군림한 마이클 밀켄과 월가 최대 기업사냥꾼인 이반 보스키의 검은 커넥션을 단죄한 것을 배경으로 한다.
줄리아니 검사는 월가의 지능범죄 척결에 집요했다. 그는 1984년 혐의 포착 후 4년에 걸친 추적 끝에 보스키와 밀켄을 차례로 기소했다. 완강히 혐의를 부인하던 밀켄을 감방에 집어넣기 위해 증권거래법 등 금융 관련법 외에도 조직범죄 처벌법인 RICO(Racketeer Influenced and Corrupt Organizations Act)까지 적용해 무려 98개 혐의를 씌웠다고 하니 그의 집념을 읽을 수 있다. 법원은 밀켄에게 징역 10년, 벌금 6억달러를 선고했다. 개인 벌금으로는 사상 최대였다고 한다. 밀켄이 소속된 드렉셀 번햄 램버트는 한때 5위의 투자은행으로 군림했으나 그의 실형 선고 2년이 지난 뒤 파산하고 말았다.
미국의 사법당국은 전통적으로 내부자거래, 주가조작 등 금융범죄에 대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내부자거래와 증권사기는 최고 형량이 20년에 이른다. 뉴욕 법원은 라자라트남에게 살인죄보다 무거운 징역 11년을 선고했다. 희대의 폰지 사기꾼 버나드 매도프에 대해서는 징역 150년을 요구한 검찰의 구형을 100% 수용했다.
금융범죄는 거래 관계가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서 위법성의 입증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도 엄격한 양형 기준이 마련돼 있지만 이런 중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불공정 거래로 50억원 이상 부당 이득을 취하면 가중 처벌을 적용해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지만 검찰의 기소율도 낮을뿐더러 설령 법정에 서도 집행유예로 풀려나기 십상이다. 법망에 걸리면 재수없다는 식이다. 돈으로 좋은 변호사를 써서 풀려나면 그만이고 내부자거래에 대한 죄의식도 흐릿하다. 시장의 질서를 깨트리는 불공정 행위를 방치하면 시장은 투전판이나 다름없다.
영화 '월스트리트'는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 테마주의 주가 조작 의혹에 이어 카메룬 다이아몬드 스캔들로 여의도가 난리가 아니다. 올해는 자본시장이 개방된 지 꼭 20년이 된다. 앞으로 금융업의 칸막이가 사라지고 투자은행(IB)과 헤지펀드 등이 자본시장의 주역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외국인이 놀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자본시장이 양들이 평화롭게 뛰노는 초원이 아닐진데 은밀한 거래의 유혹은 커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법망은 허술하고 처벌은 관대하다. 라자라트남에게 징역 11년을 선고한 리처드 홀휄 판사는 "그의 범죄는 뿌리를 뽑아야 할 바이러스"라며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옵션 쇼크를 야기한 도이치증권의 주가조작에 대한 1심 공판이 조만간 진행될 예정이다. 사법당국이 시장을 투전판으로 방치할지 일벌백계로 다스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