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티하우스 풍경.
# 담장 밖에서 유명해지다
유럽인들도 홍차를 알기 전에는 녹색 빛깔의 차만이 차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홍차를 만난 후 티(Tea)라는 이름은 곧 홍차를 가리킬 정도로 유명해졌고, 유럽인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잇는 교량 역할을 했던 중동이나 동유럽에서도 홍차는 차를 대표했습니다. 그들은 홍차를 블랙티(Black Tea)라 불렀죠.
홍차는 사람들의 몸을 따뜻하게 했고, 꽃에서 과일 향까지 그가 뿜어내는 달콤하면서 상큼한 향기는 매력적이었습니다. 농후한 맛은 음식과도 잘 어울렸죠. 무겁게 식사하는 영국인들의 아침과 저녁 식사에도 어울렸고, 한가한 오후 시간 때 간식으로 홍차는 기본이 되면서 사람들은 그를 ‘오후 차’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대중들에게도 널리 퍼져 국민차가 되었죠. 유럽에서는 은을 주고 아낌없이 그를 사들였습니다.
유럽에서 선풍적이었던 홍차의 본 고향은 중국 푸젠의 무이산! 무이산에 구곡계곡이라는 절경이 펼쳐져 있는데요, 일곡(一曲)에서 시작해 구곡(九曲)으로 이어지는 구비구비에 산수와 인문이 어우러져 있죠. 구곡이 끝나는 마지막에 자리한 마을이 성촌(星村)이고, 성촌에서도 동목촌(桐木村)이라는 마을에서 홍차가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해는 대략 1600년을 전후한 시기. 물론 지금도 홍차의 정확한 등장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1368년 명나라가 들어서고, 차를 덩어리로 짓지 말고 진상하라는 명태조 주원장의 칙령이 내려지고, 제차과정은 기나긴 실험에 들어갔죠. 그 실험 가운데 하나로 안후이 황산 부근의 송라법(松蘿法)이라는 초청(炒靑) 방식의 제차 기법이 수용되고, 무이산 밀림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이용한 홍배(烘焙) 등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홍차가 탄생했습니다.
홍차는 푸젠의 울타리를 넘어 그와 짝을 이루던 도자기와 함께 유럽으로 전해졌죠. 그를 ‘검은 차(烏茶)’라고도 불렀지만, 그렇다고 오룡차나 흑차(黑茶)는 아니었습니다. 훗날 그의 이름을 홍차라고 부른 것은 동양이었죠.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당시 유럽 시장에서 문화상품으로 최고 인기를 누렸던 동양의 물품은 도자기였습니다. 중국의 차이나에 이어 일본 도자기 역시 유럽 시장으로 진출했고, 유럽은 도자기를 자체 생산하는 등 각축이 이어졌죠. 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릇의 변화와 더불어 음료, 특히 차 산업에서도 변화가 치열했습니다.
일본은 19세기 중엽부터 자신들의 녹차와 다른 강(强) 발효차를 홍차라 이름하며 유럽 수출에 나섰고, 유럽도 비슷한 시기에 중국과 아편전쟁을 치르면서까지 홍차를 수입하고자 했으며, 인도나 스리랑카 등지에 차나무를 새로 재배하면서 중국 기문의 홍차 제조법을 커닝해서 유럽식 홍차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홍차의 시작은 무이산의 정산소종(랍상소우총)이었지만, 지금 세계 3대 홍차로 인도의 다르질링과 스리랑카의 우바 그리고 중국 기문(祁門)을 드는 것도 사실 홍차의 변천사와 관계가 깊습니다.
무이산 구곡 풍경 중 하나. 먼 이곳도 마음만 내면 갈 수 있는 곳이 됐다.
# 근대에 이어 지금 다시 부각되는 홍차의 매력
홍차도 여느 차와 같이 차나무 산지와 제조 기법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수 많은 브랜드에 따라 구분됩니다. 제작 장르에 따르면 홍차는 산화발효 계열이며, 그 정도로 하면 완전 발효차에 속하죠. 여기에 어울리는 찻잎은 비교적 작고 신선한 잎을 사용하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차 과정도 그렇습니다. 다른 차와 달리 동서양과 아프리카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홍차가 생산되는지라 그 제작 기법의 차이가 상당합니다.
소비량이 세계에서 제일 많다 보니 제작에서 홍차는 규모도 크고 변화도 빠르게 나타납니다. 제차과정에서 기계화가 발달했고,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에는 다시 정통적인 홍차가 세계 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정통적인 홍차가 부활하고 있다면, 유럽에서는 여러 산지의 잎을 섞어 만든 블랜디드 홍차와, 향료와 과일을 첨가하는 경우, 마실 때 우유와 설탕 등을 배합하여 마시는 경우 등등의 다양한 모습이 여전히 유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세계 차 소비량의 70%를 차지하는 게 홍차이니, 이를 둘러싸고 블랜디드 계열의 홍차와 오쏘독스 계열의 홍차는 더욱 치열하게 각축을 벌일 것입니다.
21세기에 다시 홍차가 유행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 이유는 홍차의 특징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홍차의 제차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성분의 변화는 다른 차에 비해 비교적 큰 편인데요. 그래서 강(强)발효차라 부르기도 하죠. 홍차의 폴리페놀 효소가 90% 가까이 감소하면서 차황소(茶黃素 theoflavin)와 차홍소(茶紅素 theaubigins) 등 새로운 성분이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향기가 다른 차에 비해 무척 농후하면서, 홍차 특유의 색깔과 향기와 맛을 내게 됩니다. 이것이 베이스가 되어 홍차의 음차 기법이 다양하게 변화 발전했던 것이고요.
대개의 차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차탄닌과 카페인 등과 같은 기본 성분에 의해 해독과 소화 등 일반적인 작용을 합니다. 이것 말고 홍차만의 독특한 성격이 있다면, 차황소와 차홍소의 긍정적인 작용입니다. 홍차는 심장기능 강화와 신경중추를 자극해 정신을 맑게 하고 사고력 집중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그래도 중요한 것은 홍차다운 성질입니다. 색(色)보다는 향(香)이, 향보다는 맛이, 맛보다는 기운이 우리 몸에서는 기준입니다. 동양학적 관점에서 홍차의 성질을 일러 ‘올림의 작용’이라 하고, 오행으로는 불(火)이라 합니다. 동양의학에서 차에도 한열(寒熱)의 성질이 있다고 말하는데요, 그 가운데 홍차와 보이차를 따뜻한 성질로 분류합니다. 따뜻하면서 몸의 기운을 상승시켜주는 홍차는, 현대인에게 필요하지만 모순돼 보이는 두 가지, 따뜻함과 각성이라는 두 요구를 적절하게 해결해 주는 차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차학과 교재에 등장하는 홍차 연구 사례는 유럽과 미국의 경우가 많은 편인데요. 홍차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양에서 유행을 했기 때문이겠죠. 긴 시간을 두고 임상실험을 한 사례도 매우 많습니다. 2015년 5월 한 중국신문에는 <미국임상영양학잡지>에 게재된 영국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 대학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보도했는데요. 25세에서 55세 사이의 17만 명의 식습관을 30년 동안 연구 진행한 결과를 분석한 것이었습니다. 홍차는 난소암 발병 위험 가능성을 낮추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게 요지였고요.
붉은 홍차와 어울렸던 붉은 빛의 자사호.
# 자연과 친하고 싶다
홍차의 성격이 있으니, 그에 맞는 홍차식 음차법도 발달하기 마련입니다. 홍차를 만드는 기법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듯이, 홍차를 마시는 방법도 다양할 수밖에 없겠죠. 어떤 홍차를 어떻게 마실 것인가에 이은 그 다음의 문제, 요컨대 홍차를 마시는 ‘누구’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주의할 몇 가지 경우를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홍차의 각성작용과 열성(熱性)의 성질을 고려하면 홍차의 음차법을 상상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빈혈이나 정신이 쇠약하고 수면부족인 경우에는 홍차를 피할 것을 권하죠. 홍차의 열성은 위를 따뜻하게 풀어주는 난위(暖胃)의 작용을 하지만, 위에 열이 많은 경우에는 오히려 주의해야 할 상황입니다. 평상시 화기가 위로 오르는 증상들, 예를 들어 설태(舌苔)가 두껍거나 구취가 있고, 눈에 충혈이 있는 경우도 역시 피해야 할 경우에 해당하겠죠. 여성들의 몸이 민감한 시기인 폐경기나 임신 기간 중에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음식이나 약의 선택은 보편성 보다는 개별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기 마련입니다. 차가 우리 몸에 이로운 효과가 있다는 것도, 차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내 몸이 필요로 하는 바와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차의 성질과 더불어 나의 개별적인 조건도 중요하다는 것이죠.
차는 지역 환경의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해당 지역의 기후와 음식 등의 환경과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게 하는, 중화제로 차는 쓰였던 것이죠. 그래서 역사적으로 중국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나아가 유럽까지도 해당 지역과 어울리는 대표적인 차가 있었던 것이고요. 흑차지구와 오룡차지구 혹은 홍차와 녹차지구가 형성됐던 것도 차가 지역 생활의 일환이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신토불이라는 개념을 달라지게 했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함수식이 달라지니, 차에 대한 기존 공식도 달라지게 됩니다. 자연과 사람이 친하게 지내기 어려운 조건에서 중화 기능을 담당했던 차는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자주 확인하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차는 대지가 우리에게 주는 젖줄과 같은 것이었고, 차는 본시 우리 몸을 원래대로 복원시키는 기제였다는 것!
“차의 냄새를 맡으면 내 정신이 극에 달함을 느낄 수 있고(臭覺精神極) 차의 맛을 보면 내 육신이 저절로 가벼워짐을 알게 된다(嘗知骨自輕)” 옛 차시(茶詩) 가운데 일부인데요. 차를 통해 내 몸을 크고 밝게 할 가능성이 무척 크다는 걸, 옛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차시에 담긴 시인의 정서를 현대를 사는 우리도 공감할 수 있겠지요! /서해진 한국차문화협동조합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