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밑지고는 못팔아" - 건설업계 "일방인상 못참아"

■ 철강업체, 건설사 철근공급 중단 선언
'가격결정' 이견…사태 장기화 불가피



철강업계의 철근 공급 중단 선언은 원재료인 철스크랩 가격 상승으로 제품가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건설업계의 가격 인상안 거부가 불씨로 작용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이미 공급한 철근에 대해서도 자금 결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판매할 수록 손해를 보느니 차라리 공급을 중단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반면 건설사들은 "철근업계의 가격 결정 방식이 지나치게 일방적인 만큼 이를 바로잡는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철강 등 다른 업체들도 31개 건자회 회원사들에 대한 철근 공급 중단을 검토 중이어서 철근공급 중단사태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 손해보고는 못 팔겠다=현대제철 등 철강업체들의 철근 공급 중단 배경에는 가격 인상 없이는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원재료 가격이 지난 8월 이후 톤당 15~20달러 이상 오른 상황에서 이를 제품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건자회 소속 31개 회원사들이 9월 철근을 공급 받은 이후 대금 결제를 미루고 있는 것도 철강업계를 자극했다.. 특히 동국제강의 경우 9월 철근 부문의 실적이 이미 적자로 돌아서 제품 가격 상승 없이는 철근을 만들면 만들수록 적자의 구렁에 빠진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는 상황이다. 한국철강 등 나머지 철근업체들도 내부적으로 대금 결제를 미루고 가격 인상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회사들을 대상으로 공급 중단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철강업체의 한 관계자는 "소재를 들여와 제품을 만들면 이윤이 나야 공장을 돌릴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현재로서는 차라리 제품을 만들지 않고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철강업체, "건자회 불공정 거래 도 넘었다"=철강업계는 철근 공급 중단 선언의 또 다른 배경으로 건자회의 불공정 거래가 도를 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과거 포스코와 동국제강 등 후판 제조 철강사들과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사들의 후판 가격 협상이 난항을 겪은 적은 있었지만 수요사들이 조직적으로 가격 인상을 거부한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유독 철근의 경우 수요사인 건설사들이 조직적으로 '가격 인상 거부' 등 담합 성격이 높은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철강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철강사의 관계자는 "4월까지는 건자회가 정식 공문을 통해 조직적으로 가격 협상을 거부하고 대응 지침을 전달하는 등 담합에 가까운 행동을 보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기록이 남는 문서 대신 휴대폰 문자 전송을 통해 회원사들에 가격 인상안 거부 방침을 전하는 등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급 중단 장기화 불가피=건설사들 역시 철강업계의 일방적 가격 인상 움직임을 이번 기회를 통해 차단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건자회의 한 관계자는 "철강사들은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가격 인상을 통보하는 식의 영업전략을 펼쳐왔다"며 "이는 철강사들의 철근 공급 중단은 공사 기간 지연 등을 볼모로 건설사에 일방적으로 가격을 올려 받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의 일환으로 건자회는 3일 비상총회를 열어 앞으로 철근 공급 중단에 따른 대응책을 모색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철강업체와 건설업체 간의 가격과 가격 결정 방식에 대한 이견이 커 철근 공급 중단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는 일본산이나 중국산 철근을 사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국내 업계의 가격 중단에 맞설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철근 공급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낸 철강업계와 이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건설사 간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어 양측 간의 극적 타결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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