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옳다고 생각하면 지금 해야지 나중에 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우 오어 네버(now or never)'라는 인생철학이 생긴 거죠. 이번 횡단을 하기 전에 중요한 과제발표가 있었지만 인생에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떠나게 됐습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50ㆍ사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 앞에 등장했다. 6월27일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해 미 대륙 횡단에 나선 지 33일 만이다. 그동안 샌프란시스코ㆍ시애틀ㆍ시카고ㆍ피츠버그ㆍ워싱턴DC를 거쳤다. 40일 일정인 그의 장정은 보스턴에서 막을 내리게 된다. 정상인도 지칠 법한 여정이지만 그의 표정은 건강했고 목소리도 자신감이 넘쳤다.
이 교수는 2006년 여름 제자들과 미국 서부의 지질환경 탐사여행을 하던 중 차가 전복되면서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로스앤젤레스의 특수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첨단 보조기술을 바탕으로 사회생활을 재개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덕분에 중증 장애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교수로 복직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사고 후) 최대 10년을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벌써 6년이 지났다"며 "지금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번 장정을 통해 그는 사고지역을 방문해 당시 운명을 달리한 제자를 추모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살려내고 첨단 재활기술들과 맞춤 보조기기들을 제공한 병원 측에 감사를 표했다. 다시 하지 못할 것 같았던 현장에서의 지질연구도 했다. "그랜드캐니언에는 2억년 동안 퇴적암이 수직으로 쌓여 있어 나 같은 사람은 보기 힘들지만 와이오밍(옐로스톤)에는 지층이 옆으로 누워 있습니다. 길을 따라 수평으로 이동하면서 시간의 흐름대로 공부를 할 수 있죠."
또 세계적인 접근성 연구기관을 방문해 협력 방안을 강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등 다국적 대기업들과 접근성 강화 문제를 협의했으며 중증 장애에도 낚시ㆍ사냥ㆍ캠핑 등 다양한 레저를 즐기는 미국 장애인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것도 해야 할 일이었다. 이 교수는 "장애인으로 살면 놀랄 일이 너무 많다"며 "우리에게는 가능하냐, 불가능하냐가 중요하고 불편하냐는 그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인종차별ㆍ성차별ㆍ장애인차별을 해결하면서 사회적 통합을 이뤄냈고 이제는 동성애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며 "한국도 장애인 문제가 공감을 이루면 이것이 다른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탐사를 하다 보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끝내고 보면 또 다음을 기약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호텔에서 잤는데 다음에는 진짜 아웃도어에서 지질 탐사를 해가며 횡단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인도양에 직접 탐사를 가는 것도 계획 중입니다. 한 2년쯤 뒤의 일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