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위기 재발하라/국내부문] 위기론 과장된 측면

▲ 정희수 서울경제연구소 소장(사회)=경제가 불안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습니다.대내적으로 가계 부채 급증, 디플레 우려, 대외적으로 미국 경제 침체 등 세계 경제 불안, 미ㆍ이라크 전쟁 가능성에 따른 유가 급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IMF사태에 이어 제2의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 정해왕 한국금융연구원장=결론적으로 위기 가능성은 미미합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때와 달리 부실 금융기관 퇴출, 부실채권 축소, 자본확충, 충분한 외환보유고 등으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크게 개선됐고 기업수익성이 월등히 좋아지는 등 펀더멘털 또한 건실합니다. 다만 세계적인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고 미ㆍ이라크 전쟁 여파가 확대ㆍ장기화할 경우 수출 급감, 성장률 저하, 실업자 양산, 가계 부실화가 나타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현재 상황은 위기는 아니지만 위기의식을 가짐으로써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중요합니다. 문제는 기업의 체력입니다. 일부 대기업만 잘 나갈 뿐 대다수 기업은 사정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과거 외환위기는 달러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면 이번에 위기가 온다면 기업 펀더멘털이 나빠져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근본적이고 치유하기 힘든 위기가 될 것입니다. ▲ 정 원장=맞는 말씀입니다. 대기업을 제외한 상장기업 490여개사의 총이익은 4,000여억원에 불과하고 현대 등 14개 대기업은 총 이익이 14조원에 달하는 경기 양극화 현상이 뚜렷합니다. 과거 개발 경제 시대의 자본 축적에 따른 성장 방식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기술발전과 연구개발에 따른 생산성 증가를 도모해야 합니다. 가계 부채 문제 및 부동산 가격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소폭의 단계적인 금리인상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부동산 거품 우려 같은 불안요인이 있다고 해서 정부의 금리 기조 자체가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현 시점에 우려되는 것은 미국 경기 불안, 미ㆍ이라크 전쟁 가능성 등을 실제 이상으로 우려해 자칫 있지도 않은 불안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부동산 버블도 서울 특정 일부 지역의 문제인데 실제 이상으로 알려진 측면이 있습니다. ▲ 정 소장=정 원장님은 금리를 단계적으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한 반면 신 장관님은 금리 인상은 안 된다는 상반된 견해를 갖고 계시는군요. ▲ 정 원장=금리 인상을 당장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경기 상황을 보아가며 단계적으로 금리 인상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 박 회장=가계 부채가 우려된다고 금리를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계 대출중 290만개에 달하는 중소기업들이 운전자금으로 빌린 것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위기가 온다면 그것은 공공과 노사부문에서 유발될 것입니다. 지난 외환위기가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에 따른 것이었다면 이번 위기는 기업의 체질 약화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치유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 정 소장=저희 연구소가 각계 전문가 100명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가계부채가 금융권의 부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42%로 나타났습니다. 세계 언론은 한국 정부가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가 위축되고 그대로 가면 가계 부채 증가로 금융권 부실이 초래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분석하고 있는데요. ▲ 윤병철 우리금융지주 회장=위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위기 의식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준비하고 대응한다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업 수익성 면에서 전체 수치는 좋아졌지만 중소기업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금융권의 과다한 가계 대출, 부동산 버블도 대비 사항입니다. 경제정책은 경기의 부침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 정 소장=지난 97년의 외환위기는 금융권의 부실에서 비롯됐습니다. 금융권의 재무 건전성은 개선됐지만 아직 이자 따먹기식 장사 등 주먹구구식 경영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 윤 회장=지금까지 구조조정은 과거 부실을 떨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이젠 선진 시스템을 정착해야 하는데 노조가 인재 스카우트를 막고 있는 등 구시대의 노사관계가 기업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요소투자에 의한 성장이었다면 이제는 노사문제 선진화, 시스템 생산성 등 혁신에 따른 성장이 필요합니다. ▲ 박 회장=노사문제는 정부가 법 대로 하면 됩니다. 법이 미비해서가 아니라 법 자체가 사실상 집행이 안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우리 기업은 종업원 학자금 등 부대 비용이 너무 들어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 정 소장=기업 전체 수익은 좋아졌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 신 장관=경기 양극화는 산업마다 성장의 싸이클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올 수 있습니다. 80년대에 섬유 신발 봉제 등은 임금 경쟁력 약화로 중국으로 대부분 이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사양 산업의 해외 투자를 권유했던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고용 등 지역사회 기여 등을 감안해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 정 소장=마지막으로 현재 국내 경제 상황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 신 장관=지나친 조바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반기 들면 수출이 나빠질 것이라고 했지만 10월 실적은 150억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잘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 잘됩니다. 중국시장은 위기일 수 있지만 커다란 기회입니다. 이라크 사태로 유가가 불안하지만 이미 가격에 반영한 상태입니다. 결론적으로 실물이 튼튼하면 위기는 오지 않습니다. ▲ 박 회장=위기는 아니지만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측면에서 97년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이전에는 경제 수치를 믿을 수 없었지만 이젠 국내외에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한국경제의 수치가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 공공 부문을 치유 못한다면 더 근본적인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 정 원장=올초부터 전문가들이 가계 대출 급증을 경고했는데 은행은 돈 벌기만 급급해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은행들은 이거다 싶으면 한쪽으로 왕창 몰리는 후진적인 경영행태를 벗어나야 합니다. 거시 지표를 보면 하반기부터 수출과 투자가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보이는데 투자가 미흡한 게 다소 걱정입니다. 이병관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