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1년] 정치 이대로는 안된다

여야 의원들은 이번 정기국회 예결위에서 어김없이 정부부처와 산하기관의 방만한 운영을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판했다.그러나 이같은 목소리는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 등이 나라를 부도위기로 몰고 갔다는 국민적 분노때문에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입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중 하나라는 결산은 물론 새해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졸속심의를 비롯, 당리당략과 지역구 사업 챙기기 등 구태를 연출해 과연 정치권이 정부를 상대로 질책할 수 있느냐는 반문도 나왔다. 6.25 이후 최대 국난으로 불리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아래 사회 각 분야가 퇴출과 구조조정이란 고통을 감내하고 있음에도 유독 정치권은 정신 못차린채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정경유착이라는 부패고리의 핵심축이자 IMF사태를 초래한 원인제공자의 하나로 자기반성은 커녕 소모적 정쟁속에서 아직까지 헤매고 있는지 1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의 고비용 저효율 정치는 나아진 게 없다. 급기야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최근 국회의원 299명 전원을 직무유기혐의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웃지못할 사태까지 벌어졌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개혁 없이는 경제회생이 불가능하다』며 강도높은 정치개혁 의지를 천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말만 앞세우고 정치개혁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 정치학자 맨셔 올슨씨는 최근 독재와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면서 독재자를 산적에 비유, 정경유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가끔 가다 산에서 내려와 돈과 재물을 몽땅 뺏어가면 농민이 다음해 농사를 짓지않고 떠나 버릴 위험이 있으므로 정례화, 일정부분만 약탈해간다는 것을 빗댔다. 5공시절 기업인이 바칠 수밖에 없는 소위 「준조세」가 바로 이것이다. 정치자금 헌납에 따른 정경유착을 없애기 위해 정치적으로 비민주적 체제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변환하여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본질적인 처방이라고 정치학자들은 지적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경우 정치자금 요구가 없어져 정치자금 마련을 위한 불투명한 경영을 할 필요가 없다. 한국정치의 민주화 즉 보스중심의 붕당구조 타파가 선행돼야 한다 또 이른바 정치의 3대 축인 선거와 국회, 정당제도도 마찬가지다. 지난 24일 한나라당이 정치구조개혁방안을 마련함에 따라 여야 3당의 정치개혁안이 윤곽을 드러냈으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여서 기대를 저버렸다. 그러나 국회예결위 상설화, 국회의장 당적금지 등은 3당의 견해가 일치했다. 각론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수를 국력이나 역할을 비교할 때 외국보다 너무 많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양원제임에도 각각 40만2,000명, 16만7,000명당 1명씩의 의원을 선출하는데 반해 우리는 단원제인데도 15만8,000명당 1명꼴로 의원을 뽑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를 감안,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은 250명선을, 자민련은 270명을 각각 주장하고있지만 자신들의 「밥그릇」싸움으로 이어져 제대로 될지 의심스럽다. 또 산적한 위기극복 현안에 비해 의원들의 입법활동도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종필(金鍾泌)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으로 상반기 국회의 본회의 개회일수는 월평균 3.16일, 상임위 개회일수는 월평균 4.7일꼴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사회 각 분야의 고통분담과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 정치권은 올들어 의원세비와 활동비를 지난해의 월 882만8,000원에서 871만3,000원으로 불과 11만5,000원을 줄이는데 그쳤다. 국회운영위는 이어 지난 25일 내년 세비를 고작 0.3% 삭감하고 4급보좌관을 늘려 추가로 드는 예산도 배정키로 결정했다. 봉급생활자의 월급이 20~30%나 격감한 것을 감안할 때 분통터질 일이다. 여기에 50년 정치사에 깊게 뿌리내린 돈정치의 관행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IMF사태를 맞아 실직자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 지난 7월 치러진 경기도 광명과 부산 해운대·기장을 등에서는 IMF이전 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이 살포됐다는 것이다. 온 국민이 IMF터널을 벗어나기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분담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태를 계속 보일 경우 시민단체로 부터「직무유기」혐의 이상의 소송을 당할지도 모른다.끝【양정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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