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단기자금 시장에 돈이 마르면서 은행간 자금거래마저 정지될 위기에 처했다. 은행 상호 간에 급전거래까지 끊기면서 글로벌 뱅킹시스템 마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비교적 건실한 투자은행으로 꼽힌 모건스탠리도 든든한 자금줄을 찾기 위해 상업은행에 매각을 추진할 정도로 글로벌 자금시장의 공포는 가히 지난 1930년대 대공황 시절을 방불케 한다. 최근 며칠 사이에 나타난 최악의 신용경색 현상은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AIG 구제금융 쇼크를 계기로 ‘다음에 누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극단적 공포감에 사로잡힌 금융기관들이 서로 돈을 빌려주기는커녕 채권을 급속히 회수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반면 채권과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한 글로벌 유동성은 안전자산으로 대탈출, 최근 안정세를 보이던 금값과 유가를 폭등세로 이끌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부실로 인한 신용위기가 자금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일시에 마비시킨 것이다. 신용위기로 인한 부실 금융기관 발생은 단기자금 시장 냉각→자금조달 비용 상승→파산 리스크 증가→신용위기 증폭으로 악순환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시스템 붕괴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존 스노 전 미 재무장관은 “자금시장이 거의 얼어붙었다”며 “신용경색을 조속히 해결하지 못하면 미 경제는 매우 심각한 하강을 피할 수 없으며 오는 2009년까지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금시장의 돈줄이 얼어붙는 한 신용위기는 더욱 증폭될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은 물론 기업들의 줄도산 사태와 이로 인한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다. 단기자금 시장의 경색 척도를 나타내는 TED 스프레드(리보와 미 국채금리 격차)는 17일(현지시간) 뉴욕시장에서 3.02%포인트로 전날보다 0.84%포인트 확대됐다. 이는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때보다 더 벌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4월 베어스턴스 구제 발표 직후에 비해서도 1%포인트 이상 높아진 것이다. 자금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TED 스프레드는 대개 0.2~0.3%포인트에서 움직인다. 이 지표가 확대되는 것은 위험거래를 반영하는 리보(Libor)는 치솟는 반면 안전 투자처인 미 재무부채권의 금리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3개월물 리보는 이날 9년 만에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하루 150조달러에 달하는 금융거래가 리보에 연동돼 있어 리보 상승은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블룸버그통신은 “시장 참여자들은 다음에 어떤 은행이 붕괴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며 “자금시장에 돈이 돌지 않고 있으며 아무도 상대방을 믿지 않는다”고 패닉에 빠진 자금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국제 유동성은 미 국채뿐만 아니라 또 다른 안전 투자처인 상품시장으로도 옮겨가고 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2월 인도분 금값은 전날보다 온스당 무려 70달러(9%)나 폭등한 850.50달러를 기록했다.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도 6.01달러(6.6%) 급등, 최근 달러 강세발 하락세를 마감했다. 세계경제의 둔화를 반영, 내림세를 보였던 국제상품가격이 신용경색으로 다시 들썩거리고 있는 것이다. 시장 상황이 악화하자 정상적인 금융기관마저 채권 부도 위험이 치솟고 있다.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살아남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도 예외가 아니다. 모건스탠리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6.8%에서 9%로 폭등했다. 1,000만달러의 5년 만기 채권에 붙는 보험료가 90만달러로 올랐다는 의미다. 골드만삭스도 4.2%에서 5.3%로 확대됐다. 이들 투자은행의 CDS 프리미엄이 서브프라임 부실로 비틀대는 씨티그룹의 3.23%보다도 높다는 것은 투자은행에 대한 극단적 불신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모건스탠리와의 합병설이 제기되는 미 4위 상업은행인 와코비아는 7.2%까지 치솟았다. /뉴욕=권구찬특파원 chans@s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