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한해 3억달러에 달하는 수출실적을 자랑하던 국내 악기업계가 7년 연속 무역 적자를 기록하며 수출 실적 1억달러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한때 세계 피아노 브랜드 2위 자리를 다투며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5,000억원 규모의 내수시장을 양분했던 영창뮤직과 삼익악기의 외형도 30% 이상 줄었다. 피아노 등의 보급율이 20% 이상 높아진데다 악기를 배우고 즐기는 악기 인구 감소로 내수시장은 물론 선진국 악기시장마저 쪼그라든 게 가장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이에더해 피아노, 기타 등 서양 악기 제조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미흡했던 것도 급속한 사양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14일 한국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악기(악기및 그 부분품과 부속품) 수출은 1억2,7014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했다. 1995년 3억6,381만달러로 사상 최대 수출실적을 달성한 이후 10년 만에 3분의1 토막이 난 것. 국내 악기산업의 무역수지도 2007년 444만달러 적자로 돌아선 이후 적자규모가 지난해(1~11월) 5,546만달러까지 10배 이상 불어난 상태다.
이 기간 악기 기업 매출도 급감했다. 삼익악기는 1996년 2,003억원에서 2000년대 들어 700억~800억원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해외 악기 브랜드 인수로 돌파구를 마련하며 최근 1,500억원대 규모로 회복한 상태다. 한때 20%에 달하는 세계 피아노 시장 점유율로 2,000억원대 매출을 자랑했던 영창뮤직은 워크아웃, 매각 등 부침으로 적정 투자 시기를 놓친 데다 무리한 해외 투자가 지금까지도 발목을 잡으면서 수년간 매출 600억원대에 머물러 있다.
악기 산업 위축의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국내외 악기 수요 급감을 꼽는다. 업계에서는 보통 가구당 피아노 보급률이 25%에 이르면 교체수요만 발생하면서 판매량 정체기에 접어드는 것으로 본다. 미국, 유럽은 물론 한국,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20%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또 컴퓨터 게임 등을 하면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등 여가문화가 달라진 영향이 크다는 관측도 있다. 신흥 시장인 중국이 그나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마저도 자국산 중저가 제품이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나 삼성전자가 내수시장에서 투자 밑천을 마련해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해외로 나간 것처럼 국내 악기 업체들도 내수시장 수요가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세계 시장에서 기술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며 "학교, 교회, 공연장은 그나마 악기 수요가 꾸준하지만, 선진국 브랜드의 중고가 제품을 선호해 영업망 확대가 쉽지 않다"며 답답해 했다.
이와함께 업계 관계자들은 수십년간 악기협회 등을 통해 국공립 초·중·고등학교나 대학, 대형 공연장만큼은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저렴한 국산 악기를 쓸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한때 피아노가 10대 수출 유망상품에 꼽힐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품질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었는데 주력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화부든 산업부든 어느 부처에서도 관심 밖이었다"며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를 다투는 회사가 두 곳이나 있었는데 국내 시장을 과점한다는 이유로 규제의 칼날만 들이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악기산업의 불황이 이어지면서 관련 기업 수도 크게 줄었다. 30년 가까이 영창뮤직 인천 검단공장에서 근무한 이종현 품질관리팀장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천 검단공단 일대에 70여개 피아노 공장이 있었다"며 "외환위기 이후 삼익도 공장을 팔면서 영창뮤직만 남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