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 뒤'를 준비할 때다

어딜 가나 온통 축구얘기 뿐이다. 포르투갈ㆍ이탈리아 등 세계강호를 잇달아 꺾고 월드컵 8강에 진출한 축구 대표팀의 파이팅이 가져온 후폭풍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온 나라에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의 함성과 붉은 셔츠의 물결이 넘쳐난다. 포르투갈을 꺾고 16강 염원을 달성하던 14일 밤도 그랬지만 이탈리아에 마치 드라마 같은 역전극을 일군 18일, 거리는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껴안고 기쁨을 나눴다.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 지위가 높은 이와 그렇지 못한 이, 그리고 경상도와 전라도도 없었다. 오직 '할 수 있다'와 '해 냈다'는 뿌듯함만이 넘실댔을 뿐이다. 혹시 '민족'이란 '집단 무의식'과 동의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는 완벽하게, 그리고 기꺼이 '집단 무의식증'에 몸을 맡겼다. 하나의 목표를 염원하며 함께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는 '우리'를 확인한 것이야 말로 16강, 8강, 더 나아가 4강을 뛰어넘는 값진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국민적 에너지를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전환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선진국에 한걸음 더 성큼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표팀의 거침없는 질주와 지방선거 결과가 몰고 올 정계의 소용돌이에 덮여 경제가 뒷전으로 밀린 듯한 형국은 걱정스럽다. 월드컵에서의 도약이 국가 신인도와 우리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줄 것은 분명하고 또 그런 긍정적 조짐 또한 뚜렷하지만 그것에 기댈 수만은 없는 까닭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미 국내ㆍ외의 경제환경은 여기저기서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경제가 심상치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2일 발표한 '세계 금융안정성 보고서'에서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가 달러약세로 이어지고 미국으로 몰리던 돈이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IMF의 이 같은 경고는 그동안 소문으로 나돌던 미국발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의 경제회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나라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지난 2월 이후 수출실적이 넉달째 주춤거리고 있다.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환율하락도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국내로 눈?돌려보면 무엇보다 노사갈등이 걸림돌이다. 다행히 현대자동차의 파업은 조기에 마무리됐지만 기아ㆍ쌍용차가 쟁의발생 신고를 내놓고 있어 자동차업계의 파업이 완전히 잦아든 것은 아니다. 게다가 두산중공업의 파업은 날이 갈수록 심각성을 더하고 대우해양조선도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는 형편이다. 경영자총협회의 '노사동향보고'에 따르면 상반기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지난해 96건의 두 배에 달하는 190건이며 이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62만5,770일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27만8,591일보다 230%나 증가한 것이다. 아직 진행 중이지만 이번 월드컵은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한다. 그리고 우리 축구는 신흥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세계에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잔치는 끝나게 마련이다. 이제는 서서히 그 뒤를 준비해야 할 때다. 마치 화산처럼 폭발하는 이 열정을, 모처럼 맛본 하나됨의 감격을 슬기롭게 결집해 경제 8강, 아니 경제 4강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누어야 할 몫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의 어깨에 팔을 얹고 소리 높여 '대~한민국'을 외쳤던 것처럼. 이종환<산업부장>기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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