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대통령-국회 대립 두고볼 수 없다

대통령·국회 모두 선출된 권력… 두곳의 갈등 쉽사리 풀 수 없어
철저한 다수결 원칙 확립 통해 현재의 '정치마비' 해소시켜야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입법전쟁이 뜨겁다. 대통령은 경제활성화와 노동개혁 관련 법안들을 국회가 하루속히 처리해달라며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여당 출신 국회의장은 현행법상 직권상정은 불가하다며 버티고 있다. 야당의원들은 대통령의 요청을 초법적 발상이라며 비난하고 여당은 대통령의 긴급경제명령 발동까지 들먹인다.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정부·여당과 야당 사이에 연일 포성이 울리고 있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위기에 직면한 한국 경제를 살리려 경제개혁을 하려는데 야당과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어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야당은 노동계 등 자신들의 지지세력이 반대하는 법안들에 동의해줄 수가 없다. 더욱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도록 협조해줄 리도 없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과반수를 넘는 국회의석을 갖고 있지만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들을 본회의에 상정조차 시킬 수 없다.


대통령제 나라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이고 정치적 마비상태다. 대통령제하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대통령과 의회는 모두 국민을 대표한다. 그런데 이 두 기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면 어느 쪽이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가. 민주주의 원칙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이런 경우 개도국들에서는 종종 헌정 중단사태가 발생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러한 단계를 지났다. 대통령이 국회를 폐쇄하거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소위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대통령제에 내장돼 있는 대통령과 국회의 대립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역시 없다. 오히려 우리는 이 문제를 최악의 상태로 악화시켜 놓았다.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이름으로 교섭단체들 사이에 합의가 안 되면 법률안을 상정조차 시키지 못하게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교착상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많은 언론매체들이나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야당과 소통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미국이나 과거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사례가 증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의 대립을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다. 대통령과 의회, 특히 야당과의 소통은 단순히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하는 것이다. 미국 정치에서 말하는 '돼지고기통(pork-barrel)'이나 '통나무굴리기(log-rolling)' 현상은 대통령이 반대파 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들이기 위해 특별교부금을 지급하거나 법안을 서로 밀어주기 하는 정치행태를 가리킨다. 중남미 대통령들은 비례대표제-다당제 의회의 조건에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 재정이나 입법 관련 막대한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예컨대 브라질 대통령은 평균 매주 한 건씩 우리의 긴급명령에 해당하는 임시조치를 발동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야단날 것이다. 여당 원내대표가 내년 예산안 통과를 위해 야당이 원했던 국회법 개정안에 동의해줬다가 대통령의 질타를 받고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났다. 야당의원들이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대통령이 낸 법안에 찬성한다면 '사꾸라'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다. 이런 풍토에서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유지하려면 이 제도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정치 관련 제도들을 일관성 있게 갖춰야 한다. 지난달 이 논단에서 필자는 정당의 공천제도·비례대표제, 의원의 장관 겸직 허용 등을 한국 민주주의의 적들이라고 지적했었다. 대통령제하에서 국회는 다수결의 원리에 철저히 부합하도록 운영돼야 한다. 그래야만 대통령제에 내장된 최대의 위험요소인 대통령과 의회의 갈등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켜줄 수 있다. 헌법개정과 더불어 선거·정당·국회 등 정치 관련 법들을 서로 일관성 있게 고치는 작업이 신속히 이뤄져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정진영 경희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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