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 포커스] 표절 논란으로 본 정태영의 노림수

제식구 보호하기? 배타적 사용권 공론화? 고도의 홍보전략?


"최고 찬사는 칭찬 아닌 모방"… "표절 여부확인 염두에 없어"

현대카드 알파벳·챕터2 상품 "삼성·우리카드가 베껴서 사용"

광고·SNS 통해 에둘러 비판


지난해 8월. 현대카드는 일부 일간지에 'COPY&PASTE(복사·붙여넣기)'라는 제목으로 광고를 실었다. 광고에는 "감탄스러운 어떤 것 앞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칭찬이 아닌 모방"이라면서 "넘어서고 싶지만 해낼 수 없을 때 결국 따라 하는 방법을 택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카드업계는 현대카드가 삼성카드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 아니냐고 수군댔다. 삼성카드가 흰색으로 통일한 숫자카드 시리즈를 연달아 선보였는데 해당 상품군이 현대카드의 알파벳 카드 시리즈와 최우량고객(VIP)을 대상으로 한 색상 카드 등을 표절한 것 아니냐고 공개적으로 광고한 셈이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삼성카드의 무대응으로 일단락됐지만 정태영(사진) 현대카드 사장은 '표절 논란'과 관련해 여전히 울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듯하다. 지난 2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우리카드가 최근 선보인 신상품 '가나다' 카드를 겨냥하며 "한 개인일 뿐인 아티스트도 앨범 발표 전에는 표절 논란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곡들과 대조를 한다"면서 "그런데 막상 큰 조직이 움직이는 다른 분야에선 그런 건 염두에조차 없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정 사장이 카드업계 수장들과 껄끄러운 관계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표절 논란의 중심에 자진해 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현대카드는 부하 직원들이 공들여 만든 카드상품을 동종 업계가 비슷하게 베껴 좌절하는 직원들의 사기 하락을 독려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카드업계는 현대카드가 '배타적 사용권' 논의를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일부에서 최고경영자(CEO)가 나서는 '고도의 광고전략'이라고 해석하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카드, "CEO의 제 식구 보호하기"=현대카드는 지난해 7월 선보인 '챕터(Chapter)2'라는 이름 아래 포인트와 할인 두 가지로 상품군을 분류하고 카드 숫자를 22개에서 7개로 대폭 줄였다. 현대카드는 챕터2를 위해 △365일의 프로젝트 기간 △21만시간 동안의 인력 투입 △인사이트 트립(Insight Trip) 9만마일 △경영진 회의 160번 등 엄청난 인적·물적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챕터2가 나왔을 당시 카드업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 카드사 수장은 "카드상품이라는 것이 본래 할인과 혜택 두 가지로 이뤄진 것이어서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면서 "포장만 잘했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또 다른 카드사 임원도 "지난 몇 년간 고도성장해왔던 현대카드가 수익성의 벽에 부딪혔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종 업계의 이 같은 멸시에도 불구, 상품 출시 9개월 새 155만장의 판매 실적을 기록하고 1인당 이용액도 과거에 비해 두 배로 향상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카드가 상품을 포인트·할인 두 가지로 나누고 상품 플레이트와 광고 사진을 챕터2의 그것과 유사하게 해놓자 정 사장이 뿔이 난 것. 현대카드 관계자는 "챕터2 출시 당시 카드업계의 비난이 많았지만 현재 소기의 성과가 나오고 있다"면서 "직원들의 이 같은 노력을 사장이 보호하고 싶은 생각에 SNS라는 공간에 자신을 팔로우업하는 사람들에게 한해 의견을 피력한 것이 이슈화됐다"고 말했다.

◇'배타적 사용권' 공론화 시도냐, 고도의 홍보 전략이냐=카드업계는 현대카드가 배타적 사용권을 공론화하려는 시도 아니냐고 분석한다. 은행·보험·증권 등 다른 금융업권에서는 법에 명시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개별 회원사들이 신상품 출시 때 일정 기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배타적 사용권을 도입하고 있다. 카드업계에는 이 같은 사용권이 도입되지 않았다.

제조업 내지 타 금융권에 비해 카드상품은 서비스 내지 상품 구조가 단순할 수밖에 없어 도입 시 끊임없는 논란이 일어날 것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몇 개월 동안 신상품을 출시한 한 카드사만 상품을 판매하게 되면 경쟁 카드사들이 더 많은 부가 서비스를 담은 카드를 선보일 수밖에 없어 과당경쟁이 유발된다는 우려도 있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카드사에서 나오는 금융 서비스는 단순해서 배타적 사용권을 주장하기 어렵다"면서 "현대카드가 삼성카드와 표절 시비가 붙었을 때 배타적 사용권 얘기가 나왔는데 2년이 지난 시점에 이 같은 논의를 재점화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사장이 벌이는 고도의 홍보 전략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 사장이 회사의 공식 통로가 아닌 SNS를 통해 에둘러 상황을 비판하고 나서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도록 만드는 정교한 플레이라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정 사장의 페이스북 댓글에 "정 사장의 발언이 페이스북 글이라는 형식으로 기획, 제작, 집행된 COPY&PASTE 광고의 속편처럼 보인다"고 촌평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