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얀 가마드 Yann Gamard 글라슈테 오리지날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얀 가마드 CEO는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브랜드 정체성과 이를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1845년 창립한 독일계 명품시계 브랜드로, 독일 시계 브랜드 특유의 절제되고 정제된 이미지가 유명하다.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얀 가마드 CEO는 과거 몇몇 시계 브랜드에서 재무관리 전문가로 활동했다. 1995년 재무이사로 스와치그룹에 합류해 2011년부터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수장을 맡고 있다.
시계 업계에는 인사철마다 등장하는 속설이 하나있다. 각 브랜드의 CEO는 그 시계 브랜드와 가장 이미지가 맞아떨어지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얀 가마드 CEO는 이 속설에 정확히 부합하는 인물이다. 어떤 질문을 던지든 그는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가 아니라는 배경 때문에 글라슈테 오리지날이 다른 명품시계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느냐’는 다소 불편한 질문에도 얀 가마드 CEO는 정공법으로 맞받았다.얀 가마드 CEO는 말한다. “물론 우리는 스위스 브랜드가 아닙니다. 스위스 하이엔드 브랜드들과 경쟁하는 독일 시계 브랜드죠. 스위스 하이엔드 브랜드들과 경쟁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배경은 우리에게 기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스위스 시계 수준의 품질을 요구하면서도 ‘스위스 메이드 Swiss Made’ 이외의 다른 시계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아주 매력적인 브랜드가 될 수 있어요.”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1845년 창립했다. 글라슈테 오리지날이라는 브랜드는 독일 시계산업의 성지로 유명한 글라슈테 Glashutte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생산기반이 와해된 글라슈테 지방의 시계 업체들이 1951년 이 지역의 시계 업체들을 통합해 만든 VEB 글라슈테가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전신이다. 1994년 현재의 이름인 글라슈테 오리지날이 됐고, 그로부터 6년 후인 2000년 스위스계 거대 시계그룹인 스와치그룹에 인수됐다.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스와치그룹에 인수된 이후에도 본연의 브랜드 정체성을 잘 유지하고 있어 시계 마니아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얀 가마드 CEO는 말한다.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외부 디자인을 하려고 합니다. 시계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무브먼트(시계에 동력을 제공하는 내부장치)는 하이엔드 퀄리티를 추구하고요. 이 두 조합 덕분에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시계들은 매우 심플하면서도 정교하고 우아한 매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고객들이 저희에게 원하는 것도 바로 그런 거고요. 그래서 우리는 한때의 유행을 따르기보단 글라슈테 오리지날 고유의 브랜드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데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브랜드를 사랑하는 고객의 요구에 가장 부응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같은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브랜드 운영 방식은 최근 시계 업계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다른 시계 브랜드들은 최근 ‘일탈’을 선보이는 일이 잦아졌다. 타깃 시장이나 고객의 기호를 적극 반영하다 보니 기존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계들을 내놓아 주목을 받기도 한다.
더 유별난 사례로는 각 시장의 소비자 기호에 맞게 브랜드 정체성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스포티한 이미지가 브랜드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 브랜드임에도 한국에선 클래식워치 브랜드인 것처럼 마케팅하는 경우다. 국내 명품시계 시장에선 클래식워치 브랜드의 인기가 더 좋기 때문이다.
얀 가마드 CEO 역시 각 시장의 특징들을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각 시장의 특성이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브랜드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면 이를 시계 제작에 반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얀 가마드 CEO는 말한다. “아시아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크면서도 아주 독특한 시장입니다. ‘12간지’ 등 시간과 관련한 재미있는 내용도 많고요. 이런 내용을 시계 제작에 반영하는 건 아주 흥미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이 글라슈테 오리지날이 그간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실 글라슈테 오리지날이 특정 시장이나 고객군을 위해 특별한 모델을 선보인다든가 제작 공정에 변화를 준다든가 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죠. 앞서 말했듯이 단순히 특정한 기호나 유행에 맞춰 브랜드를 운영하는 건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스타일이 아닙니다.”
최근 시계 업계의 최대 화두는 스마트워치다. 명품시계 업체 중 몇몇 브랜드가 스마트워치를 출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 9월 글라슈테 오리지날이 속해 있는 스와치그룹도 스와치 브랜드를 통해 스마트워치를 출시한 바 있다. 글라슈테 오리지날도 스마트워치를 만들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얀 가마드 CEO는 다소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얀 가마드 CEO는 말한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새로운 기술이 나와도, 우리는 항상 그것을 우리 식대로 재해석해 손목 위에서 구현해냈습니다. (왼손을 쭉 내밀어 자신의 시계를 보여주며) 이 시계(Senator Cosmopolite 모델로 기계식 시계였다)가 제 대답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계는 매우 특별합니다. 저는 이 시계를 스마트워치라고 생각해요. 잘 보세요. 이 시계는 전 세계의 모든 타임 존을 체크할 수 있습니다. 서머타임까지도요. 그것도 이 크라운 하나로 말이죠. 게다가 이 시계는 충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도 필요 없죠. 그것뿐인가요? 이 시계는 매년 가치가 오릅니다. 내 아이들이 물려받을 쯤엔 지금보다 훨씬 더 가치가 올라 있겠죠. 스마트워치 이상의 스마트워치 아닌가요? 이것이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방식입니다.”
얀 가마드 CEO가 착용하고 있는 Senator Cosmopolite 시계.
<이하 박스 기사>◇ ‘장인 정신’이 글라슈테 오리지날의 핵심
얀 가마드 글라슈테 오리지날 CEO는 글라슈테 오리지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장인(匠人)’을 꼽았다. 글라슈테 오리지날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게 해준 원동력이 장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2015년에 창립 170주년을 맞은 브랜드입니다. 그 과정에 정말 많은 굴곡이 있었죠. 서너 번은 와해 직전까지도 갔었습니다. 하지만 글라슈테 오리지날은 매번 부활했습니다. 대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시계장인들 덕분이었죠. 저는 이 장인들이 있기에 글라슈테 오리지날이 미래에도 영속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