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기발한 발상과 대중성의 조우

■ 새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천하장사 마돈나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흔해 빠진 영화들. 매번 색다른 각본, 형식,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충무로와 할리우드지만 정작 새로움을 만들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조그만 발상을 바꾸면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뻔한 이야기에 재미있는 발상을 첨가해 색다르게 뽑아낸 두 편의 영화가 공개됐다. 한 뚱보소년의 씨름선수 성공기 ‘천하장사 마돈나’와 색골 노총각과 히스테릭 노처녀의 좌충우돌 연애기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이 그것. 한편은 스포츠영화, 또 한편은 로맨틱 코미디의 외연을 지녔다. 하지만 기발한 발상전환으로 이들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그 색다름을 만나보자. ◇ 천하장사 마돈나 “도대체 대중성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소재”.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의 핵심이 되는 소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소재란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이미 ‘장밋빛 인생’ 등 해외 영화들에서 종종 다룬 소재이긴 하지만 그 영화들 역시 대중적이지는 못했다. 그만큼 민감한 소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 민감한 내용을 가지고 웃기면서도 따뜻한 영화를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 영화는 이해준, 이해영 두 사람의 처녀작. 첫 작품이라 좀 어설프겠거니 했더니 이들의 경력이 남다르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신라의 달밤’‘품행제로’ 등 수많은 관객들을 웃겼던 흥행 코미디의 각본을 써왔다. 알고 보니 이들은 충무로의 소문난 이야기꾼이었던 것. 이들의 경력이 말해주듯 이야기는 술술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웃음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영화의 설정은 이렇다. 주인공 오동구(류덕환)는 몸무게 83kg, 발사이즈 280mm, 머리둘레 62cm의 거구. 게다가 힘도 장사다. 하지만 그에겐 꿈이 있다. 성전환수술을 받아 여자가 된 뒤 ‘마돈나’같은 섹시 스타가 되겠다는 것. 하지만 술주정뱅이에다가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살고 있는 그에게 꿈은 멀기만 하다. 그러던 중 씨름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장학금 5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동구는 그가 그토록 끔찍하게 생각하던 ‘남자들의 스포츠’ 씨름을 시작한다. 영화는 이처럼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이 마초성이 철철 넘치는 씨름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묘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머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사람들 앞에서 알몸을 보여주기 싫은 동구가 젖꼭지를 칼라 반창고로 붙이고 나오는 등 동구의 여성성과 씨름의 남성성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유머는 그래서 웃기다. 하지만 영화의 미덕은 단지 웃기다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칭찬해줘야 할 부분은 이 영화의 따뜻한 감수성이다. 영화는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의 마음을 편견에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세심하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동구의 ‘여자 되기’에 완강히 반대하던 동구의 부모, 동구를 단지 신기하게만 바라보는 친구 등 주변 인물들이 그를 이해하는 과정도 섬세한 터치로 묘사된다. 영화는 이를 통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여성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는 이야기에 정통한 감독들이었기에 가능한 재주다. 결국 만들어진 영화는 스포츠영화의 틀 위에 ‘게이 코드’가 가미된 성장영화. 충무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관객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 전개와 소소한 유머를 통해 무겁거나 진부하지 않고 재미있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로맨틱 코미디는 늘 뻔하다. 어딘가 좀 모자른 남자와 여자가 만나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이후로 수 없이 반복되는 이런 패턴에 관객들이 질릴 때도 됐다. ‘고스트 버스터즈’ ‘이볼루션’ 등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어온 이반 라이트만 감독은 이런 로맨틱 코미디의 상투성에 딱 한가지의 설정을 가미해 영화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 설정이란 영화의 여주인공이 초능력을 가진 슈퍼 영웅이라는 것. 슈퍼맨, 배트맨 등의 초능력 영웅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늘 의문이 간다. ‘그들은 정말 연애마저도 예쁘고 정의롭게 할까?’ 슈퍼맨은 연인인 로이스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스파이더맨 또한 사랑하는 메리제인에게 순정을 바친다. 그런데 멋있긴 하지만 왠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속의 여성영웅 ‘G걸’은 그렇지 않다. 슈퍼맨 급의 엄청난 초능력자이긴 하지만 그 속은 완전히 ‘히스테릭한 노처녀’다. 영화는 이 노처녀를 사랑하게 된 한 남자의 고생담이다. 온순한 성품의 남자 매트(루크 윌슨)는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난 여자 제니(우마 서먼)와 연인이 된다. 수수하고 조금은 히스테릭하기까지 한 전형적인 노처녀 제니.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의 정체는 ‘G걸’이었다. 그녀는 온 도시의 범죄와 재난현장을 돌아다니며 사회정의를 지키는 슈퍼영웅이었던 것. 도시 안의 모두가 사랑하는 그녀이지만 정작 연인으로서는 별로다. 불안정한 성격에 툭하면 의심하고 툭하면 힘자랑이다. 이에 매트는 제니를 떠나고자 결심한다. 하지만 이를 안 제니는 매트에게 실연당한 여인의 처절한 복수를 시작한다. 영화는 초반부 ‘힘쎈 여자와 나약한 남자’라는 전복된 상황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낸다. 여자가 슈퍼영웅인 것을 모르는 남자는 힘 쎈 여자친구의 모습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러다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고, 남자가 이별을 선언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히스테릭한 노처녀가 세계평화를 지키던 초능력을 사적인 감정에 십분 활용하여 처절한 복수극을 펼치는 것. 그 복수란 것이 상상을 초월한다. 남자가 애지중지하던 자동차를 우주 밖으로 던져버리고, 남자의 침실에 식인상어를 풀어놓는 등 그 발상의 기발함에 혀가 내둘러질 정도다. 영화 ‘킬빌’의 복수자로 출연했던 우마 서먼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십분 활용된다. 살벌한 눈으로 자신을 차버린 남자를 협박하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겁난다.’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은 유쾌하고 즐거운 영화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발산되는 상상력을 보고 있자면 시간이 절로 흐른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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