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웃사이더 열풍, 강 건너 불구경일까

기성정치에 염증 느낀 유권자들 美·유럽 아웃사이더 약진 이끌어
정쟁만 일삼는 한국 정치권에도 경각심 일깨울 '바람' 필요한 때


선거 무대가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후보 사퇴는 기본이요, 명예훼손과 성희롱 혐의로 부지런히 검찰을 들락거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성희롱으로 물어야 할 합의금만 수억원은 물었을 판이다. 하지만 경선의 무대가 표현의 자유에 관대한 미국인 탓일까.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경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도를 넘어선 막말은 거침이 없고 여전히 지지도는 굳건하다. 경선 초기만 해도 그의 인기가 반짝했다 시들 것이라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트럼프의 주장 대부분은 기존 미국 사회가 추구하는 기본 가치에 반한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특정 인종은 물론 성적인 비하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조차 "트럼프가 블루컬러 남성들의 분노와 좌절감·공포를 악용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판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미국의 보수 유권자들은 트럼프에 열광하고 있다. 의문의 답은 그의 지지층에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와 AP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층은 백인 남성, 연소득 5만달러 이하의 중저소득층, 대졸 미만의 저학력층에 몰려 있다. 그들은 미국 사회에서 급격하게 늘고 있는 히스패닉계 등 유색인종이 자신들의 몫을 뺏는다고 여긴다. 자신들이 차지해야 할 좋은 일자리, 복지혜택을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박탈감, 불만을 속 시원하게 떠들어 대는 트럼프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셈이다.


아웃사이더 돌풍은 미국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 한 해 유럽 대륙의 정치를 뒤흔들고 있는 키워드는 다름아닌 '아웃사이더'다. 최근 스페인 총선 판을 뒤흔든 포데모스는 창당한 지 2년도 안 된 신생 정당이다. 이 당을 이끄는 리더 역시 올해 갓 36살의 초짜 정치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다. 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의미의 포데모스는 지난 2011년 5월 정부의 과도한 긴축정책과 서민경제 파괴에 반대하며 마드리드에서 시작된 시위에 뿌리를 두고 지지기반을 넓히며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케이스다. 포데모스가 총선에서 기존 양당 정치를 무너뜨린 것은 반긴축·부패척결 등 포퓰리즘적 공약도 있지만 밑바탕에는 경제 침체로 기성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과 분노가 깔려 있다. 반부패를 내걸고 2013년 제1야당에 오른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반긴축을 내세워 그리스의 집권당을 차지한 '시리자'의 성장 과정과 유사하다. 이들 아웃사이더의 약진은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혐오의 결과물이다. 심지어 상당수 주장이 비이성적이고 급진적임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경제를 파탄으로 내몬 기성 정치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에 열광하고 지지한다.

물론 이들이 기성 정치판을 완전히 뒤집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내세우는 상당수 정책이 너무 급진적이고 기존의 보편적 국민적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파리테러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 당시 1차 투표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결국 2차 투표에서는 전패한 것만 보더라도 기성 정치권의 벽은 아웃사이더들이 넘어서기에는 너무 높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정치에서는 아직 아웃사이더 돌풍은 엿보이지 않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지만 그 역시 파워게임 과정에서 갈라선 기존 야당의 또 다른 줄기 이상은 아니다. 현대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보더라도 정상적인 선거의 과정을 통해 정치판을 뒤집은 아웃사이더는 없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산적한 경제 현안들은 팽개쳐 놓고 밥그릇 싸움에만 빠져 있는 정치권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아웃사이더 열풍이 불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줄 아웃사이더가 좀 나왔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뒤엎지는 못하더라도 정치권의 정신이라도 번쩍 들게 말이다. 단 공중부양하는 아웃사이더는 사절이다.

/정두환 국제부장 dh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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