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들이 묻혀버린다

컨버전스(Convergence) 시대에 통신 기술은 숨가쁠 정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해 고스란히 사장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기술은 날아가는데 반해 제도는 예전처럼 기어 다니는 형국이다. 업계는 기술이 제도를 리드해가는 게 시장의 원리지만 통신의 경우 그 격차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는데 우려하면서 정부의 보다 빠른 정책 집행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한 이동통신사는 몇 달 전 휴대폰으로 신용카드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정부측에 사용허가 검토를 요청했다. 그러나 관할기관인 금융감독원이 사업자에게 “관련 법규가 없어 검토 중이니 기다리라”는 말만 수 개월째 되풀이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기술 개발한지 1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상용화의 길은 멀기만 한 실정이다. KT가 준비하고 있는 유선전화와 이동전화를 한번에 사용할 수 있는 `원폰`서비스도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결합 상품 금지 제도에 묶여 출시가 불투명하다. 이 서비스의 경우 단순히 끼워팔기식의 상품이 아닌 유무선 통합이라는 새로운 `기술적 통합`이라는 점에서 결국 소비자들의 편익과 직결된다는게 KT측의 입장이다. 비동기식 IMT-2000서비스인 WCDMA도 사업자의 판단과 정부의 정책이 출동하는 대표적인 사례. 이통사업자들은 과거 예상과 달리 기존 2G(세대)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3G를 늦출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당초 약속을 이행하라`며 올해 안 상용화를 강행했다. 결국 이달 말 서비스 출시가 예정된 WCDMA의 경우 `서비스는 있지만 가입자는 없는`기형적인 형태로 출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국내 통신업체의 한 고위 관계자는 “통신 시장은 타임투마켓(time to market)이 중요한데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나 관련 법규 미비로 서비스 시기가 늦춰져 사업성이 악화되는 사업들이 수두룩하다”고 토로했다. 이영수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재 정부 통신정책의 경우 정부 부처간의 갈등과 정부와 사업자간의 갈등으로 많은 부분들이 표류하고 있는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통신산업에 대한 큰 흐름을 확고히 잡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권홍우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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