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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계속 금융개혁을 열심히 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발표된 지난 21일 오후3시. 금융개혁 성과를 발표하는 행사장에서 만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경제부총리를 낙점 받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홀가분해진 덕분인지 임 위원장은 밝은 표정으로 "제 할 일이 분명해졌죠"라며 금융개혁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금융당국 수장으로 재신임을 받아 후반전을 뛰게 된 임 위원장은 '거친 개혁'이라는 말로 변신을 선언했다. 그는 28일 열린 금융위 송년회에서 "지금까지 금융개혁은 누구나 공감하고 큰 줄기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 '착한 개혁'이었다. 앞으로는 거친 개혁도 마다하지 않겠다. 반대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때로 그것을 뛰어넘기도 하고 설득해야 할 사람들을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송년회가 열린 예보 대강당은 올해 초 금융당국과 금융사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금융산업 발전방향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던 곳. 당시 임 위원장은 농협금융지주 회장 신분으로 참석해 "규제완화를 절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절절포')"라고 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후 그에게는 '미스터(Mr) 절절포'라는 애칭이 생겼다.
임 위원장 취임 이후 금융개혁은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 보험업 자율화, 계좌이동 서비스, 크라우드 펀딩 등 주로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완화가 주류를 이뤘다. 임 위원장 스스로 '착한 개혁'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이다. 그 과정에서 금융회사 직원들의 현장 건의가 다수 받아들여졌다. 금융위 실무 부서가 반대한 것을 고위직과 난상토론을 통해 수용한 사례도 많았다. 사전감독에서 사후감독으로 바뀌면서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한 금융감독원의 역할과 기능도 크게 줄였다.
임 위원장은 "가장 든든한 후원군은 금감원"이라면서 "금융개혁 과정에서 기득권과 권한을 내려놓아야 하는 결정을 해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금융회사에 대해서도 "금융회사 직원들이 보낸 3,000여개의 건의사항이 금융개혁의 토대"라고 고마워했다.
그러나 임 위원장이 기치로 건 현장 중심 금융개혁은 큰 방향 없이 중구난방 식으로 흘러간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금융개혁의 실체가 뭔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줄을 이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입김에 휘둘린다는 일침도 나왔다. 이른바 '우간다' 발언은 결정타였다.
임 위원장은 뜻밖에도 금융개혁에는 언론의 도움이 컸다고 토로했다. 그는 "금융개혁에 왜 사공이 많으냐 하며 보도를 통해 (중심을) 잡아준 게 큰 힘이 됐다. 흔들릴 때 잡아주고 자만할 때 혼내주고 해서 금융개혁을 그나마 1년간 버티게 해 준 힘이었다" 회고했다.
임 위원장도 "어떤 회의에서 금융위가 디테일의 함정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쇼크에 빠졌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거대담론에 빠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떠올려 현장의 필요에 의해 금융개혁을 지속했다"고 털어놓았다.
임 위원장이 말하는 거친 개혁이란 무엇일까. 금융계에서는 금융당국의 규제완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만큼 이제는 금융회사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특히 금융회사의 성과주의 문화 확산이 임 위원장이 말하는 거친 개혁의 1순위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금융회사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눈앞에 두고 총선이 벌어지는 시기지만 금융회사의 생존을 위해서는 성과주의 문화가 필요하다는 게 임 위원장의 지론이다. 그는 사석에서도 몇 번이나 "금융개혁이란 금융회사가 싫어하는 경쟁을 도입함으로써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고 소비자의 혜택을 높이는 것"이라면서 성과주의 문화 확산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2~3년은 금융과 정보기술(IT)이 결합한 핀테크로 인해 금융계 전반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면서 "성과주의는 금융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변화"라고 했다.
임 위원장은 23일 마지막 금융개혁 회의에서 꾸준하게 추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현대판 우공이산(愚公移山) 일화를 소개하며 의지를 다졌다. "인도의 다시랏 만지씨는 산으로 가로막혀 병원을 돌아가느라 아내를 잃었고 그런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22년간 망치와 정만으로 산을 깎아 병원으로 가는 지름길을 만들었습니다. 금융개혁도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어느덧 우리가 꿈꿔왔던 새로운 금융세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임세원기자 w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