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산책] 문화가 있는 농촌과 저출산 해법

저출산·고령화 문제 심각하나… 지방인구 유출 역시 경계해야
지역 문화 브랜드 만들어낸 야소골·이응노마을 참고할 만

송희영 서울예술대 교수


초겨울 한낮 햇살이 따뜻한 지난 11월 마지막 주말. 마을 입구 개울가 공터에 마련된 라디오 공개방송 스튜디오에서 경쾌한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온다. 고요하던 마을이 갑자기 술렁이며 40여명의 어르신들로 꽉 들어찬 방청석에 활기가 넘친다. 스튜디오 유리창에 '온에어' 사인이 들어오자 어르신들은 차례로 라디오 초대석의 주인공이 된다. 편안한 일상 어투 그대로 마을 소식을 전하며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하고, 도시에 나가 있는 아들딸 들과 전화로 안부를 묻고,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군사용 숯을 구워 수군에 조달했던 옛 조상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꾸민 단막극 '야소골의 달빛'에서는 노련한 연기자들로 변신해 500여년 전 마을의 이야기를 거뜬히 재현한다. 행사가 끝난 자리는 막걸리와 떡국을 나누는 화기애애한 잔치마당이 된다. 축제 같은 마을 공개방송이 펼쳐진 곳은 경남 통영시 산양읍 남평리 일명 야소골로 불리는 시골이다. 이번에 두 번째로 열린 야소골 촌 라디오 방송은 농촌지역의 문화공동체마을 조성을 위해 마을 주민자치위원회와 통영연극예술축제위원회가 주관해온 마을행사다.

이보다 2주일 앞선 11월 둘째 주말 오후 충남 홍성군 홍북면 용봉산자락 홍천마을에 위치한 고암 이응노 화백의 고택 연못가 마당에서는 늦가을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임에도 '추억의 포크송' 콘서트가 열렸다. 이 콘서트는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기타동호회, 보컬밴드, 오카리나합주단이 생계를 꾸려가며 틈틈이 익힌 클래식 명곡과 민요·가요 애창곡 실력을 주민들 앞에서 선보이는 자리였다. 아마추어라고 하나 공식 무대에 서는 음악애호가들의 진지하고 정성 어린 연주와 무대 매너는 프로 연주자 못지않은 감동을 줬고 연주회를 마친 후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이날의 흥겨운 분위기를 대변해줬다. 홍성군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는 문화특화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홍성 출신인 고암 생가터에 기념미술관을 건립했다. 더불어 마을을 상징하는 연밭을 복원해 마을주민들을 위한 열린 문화놀이마당으로 가꿨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미래 우리 사회 발전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사회학자들의 경고와 예측이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러나 시민들은 현실 생활에서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최근 충남연구원은 충남도 내 인구고령화 심화로 오는 2040년 도내 351개 마을이 사라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비단 충남만의 문제가 아니다. 2040년께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전국 72개 지자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32.4%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현상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흔히 출산유인책으로 육아복지 강화 전략과 도농 간 균형발전 정책이 제안된다. 이와 관련해 우리 사회보다 앞서 인구감소와 농촌쇠퇴 문제점을 분석한 일본의 마스다 보고서를 토대로 전 총무상 마스다 히로야가 쓴 저서 '지방소멸'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미래 사회의 위기를 여성 사회진출 증가와 평균 결혼연령 지체에 따른 저출산 문제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날로 심각해지는 도시의 인구집중화, 즉 지방으로부터 대도시권으로의 인구유출을 더 경계하라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지방의 인구공동화 현상을 방지할 지역 활성화 정책 마련이 급선무임을 지적한다.

통영 야소골의 라디오 방송과 홍성 이응노마을 문화놀이마당의 사례는 지역문화자원을 활용한 문화 브랜드 창출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살고 싶은 농촌,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고 싶은 지역주민들의 욕구에서 출발했으며 무엇보다 주민이 중심이 되는 생활 속 문화를 주민 스스로 독려하고 있다는 두 마을의 공통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서 지역문화의 터전을 만드는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병신년 새해에는 저출산 ·인구고령화, 농촌마을 붕괴 등 사회문제에 대비하고 배려하는 세심한 정책을 기대해본다.

송희영 서울예술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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