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월1일 영국. 집권 보수당이 충격에 빠졌다. 총선에서 참패한 탓이다. 18년 동안의 장기집권에 따른 국민들의 거부감이 선거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석 수가 336석에서 165석으로 줄어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보수당은 허탈감에 빠졌다. 반면 예상을 뛰어넘은 압승을 거둔 노동당 총재 토니 블레어(당시 44세)는 영국 역사상 세번째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안고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로 들어갔다. 경제학자들은 정치인들보다 더 놀랐다. ‘경제 성적표가 좋으면 여당이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통설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당이 ‘영국경제의 호황’을 선거구호를 사용할 정도로 경제는 잘 돌아갔다. 1992년부터 총선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2.4%. 서유럽 국가 평균을 한참 앞질렀다. 기준금리도 연 10.5%에서 6%로, 물가상승률은 4.3%에서 2.6%로, 실업률은 9.5%에서 7.2%로 각각 떨어졌다. 뜻밖의 총선 결과에 경제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경제적 고통지표는 더 이상 선거 변수가 아니라는 성급한 결론도 나왔다. 갑론을박 속에서 가장 타당성을 인정 받은 주장은 양극화론. 영국경제가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산층 가정의 실질소득 증가분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성장의 과실을 일부가 독점한 탓이다. 상위 10% 부자는 소득이 62% 늘어났으나 하위 10%는 오히려 17% 감소했다. 1997년 영국 총선은 양극화가 결정한 셈이다. 언론은 ‘경제를 무기로 집권한 보수당이 경제라는 칼날에 무너졌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국의 4ㆍ29재보선에서도 집권여당이 완패했다. 양극화 심화며 기대보다 경제성적표가 좋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과 영국은 13년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떠나 닮은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