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고 김남주시인 부인 박광숙씨 산문집 펴내

『한 산을 넘으면 바위로 험악한 또 하나의 산이 있고, 물을 건너면 파도로 사나운 또 하나의 바다가 있듯 우리의 사랑의 길은 고달프고 멀다는 것. 그러니 산이라면 넘어주고, 물이라면 건너주겠다는 심정으로 우리의 이 애틋한 사랑을 키워갑시다』지금은 고인이 된 김남주 시인이 옥중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 한 토막이다. 이제 그 아내 박광숙씨(49)가 이렇게 말한다. 『봄은 얼마나 끔찍한 형벌입니까. 나는 그 형벌에 채찍질당하고 담금질당하며 이 봄을 저주합니다. 죽었던 나뭇가지가 다시 살아나 잎을 피우는 것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황토바람만 일구던 흙이 뿌리와 씨앗에게 생명을 되돌려주다니! 이토록 잔인할 수가 있습니까. 죽었다가 다시 싹을 틔우고 생명의 꽃을 피우는 자연의 순환을 나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돌아올 수 없는데, 온 천지에 진달래꽃이라니, 개나리라니, 라일락이라니!』 지난 94년 김남주 시인이 3개월간 힘겨운 암 투병 끝에 사망한 후 강화에 내려가 아들 토일이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박광숙씨가 산문집 「빈들에 나무를 심다」(푸른숲 펴냄)를 내놨다. 국어교사를 하던 박광숙씨가 남편을 여의고 선택한 길은 땅과 만나는 일. 『인간은 노동에서 멀어질 수록 타락해간다』는 남편의 시구를 잊을 수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땅을 일구고 자연의 그 찬란한 생명력을 확인하면서 그녀는 왈칵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아이가 목욕을 하다가 아빠가 보고 싶다며 통곡을 하면 『그래, 엄마가 하늘로 올라갈 콩나무를 심어줄게』라며 달래곤 했던 박광숙씨. 흙이 그녀에게 어떤 희망을 주었을까. 『이제 어둠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빈 들을 서성입니다. 겨울의 문을 밀어내고 바다로 나아가 뻘흙 위로 피어오르는 갯내음에 코를 적시며 저 멀리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두 팔 벌려 맞이합니다』 남편이 떠난 자리, 황량한 겨울을 청청한 푸른 빛으로 지켜줄 나무를 심고 또 심고 있다는 박광숙씨의 산문집은 꾸밈없는 생활의 기록으로써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새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녀는 이제 울고 있지만은 않고 다만 갈수록 척박해지는 세상 풍경을 안쓰러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씩씩하게 자라나는 아들 토일이와 함께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용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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