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베이비부머 황금연못을 찾아나서다] (3부-2) 자원봉사는 인생의 재발견

애플세대 (Active·Pride·Peace·Luxury·Economy)
쌓아둔 지식·富 사회로… "황혼을 나눔으로 덧칠했죠"
좀 더 멋진 노년의 삶 위해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 추구
경제력 바탕으로 경험 살려 문화해설사·교육 서비스 등 은퇴 후 다양한 분야서 활동



전업주부였던 장혜숙(53)씨는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도슨트(전시해설사)로 3년째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장씨는 남편의 사업 때문에 10여년 전 독일ㆍ프랑스 등지에 머물렀던 경험으로 박물관ㆍ미술관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내가 아는 것을 통해 관람객과 교감하고 소통할 때 삶의 큰 기쁨을 느낀다"면서 "65세 이상까지도 참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라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이 일을 할 수 있어 다가올 시간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벤처기업 대표인 최규철(60ㆍ가명)씨는 지난달 미국 시애틀에 전망 좋은 빌라 한 채를 구입, 예술가들이 머무르며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레지던시'로 제공했다. 미술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최씨는 잦은 해외출장에서 한국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예술가 지원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는 "그동안 거둔 사회적 성공을 봉사로 되돌려줄 때가 됐다"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전했다. 최씨는 뉴욕과 베를린에도 작은 레지던시 공간을 추가로 마련하기 위해 물색 중이다. 기존의 수동적인 노인들과 달리 좀 더 멋진 노년의 삶을 사는 이들을 가리켜 '애플(APPLE)세대'라고 한다. 활동적(Active)으로 자부심(Pride)을 갖고 안정적인(Peace) 고급문화(Luxury)를 즐기려는 경제력(Economy) 있는 노년층을 압축해 이르는 말이다. 이들 '애플세대'가 지향하는 노년이 바로 '봉사하고 나누는 삶'이다. 성인 심리학자인 버니스 뉴가튼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55세 정년을 기점으로 75세까지를 '연소노인(Young-old)'으로 분류하고 이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새롭게 만들어가려는 의욕을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연소노인은 건강하고 활발해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어가는 젊은 노인이라는 뜻이다. 특히 은퇴를 앞둔 한국의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은 사회참여 의식이 높은데다 21세기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기를 거쳤기에 개인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여가활동보다 사회 공통의 문제나 가치를 고민하고 실현하기 위한 봉사적 여가활동에 관심을 갖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윤소영 박사는 "베이비부머들이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조사했더니 '소득유지'도 중요했지만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사회성 여가'로 자기 만족 외에도 사회공헌적 가치를 구현해 자신의 삶을 보다 보람 있게 만들고 자기 존재의 가치를 확인시키는 봉사적 여가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은퇴 후의 이 같은 활동은 문제의식이나 사회적 의무감으로 접근하는 '자원봉사'와 다르다. 인생의 전성기 때 축적한 지식과 경험ㆍ노하우와 취미를 다른 세대나 다른 계층에 나눠주는 '공유'의 개념이 강하다는 의미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2009년에 발표한 '은퇴 노인의 사회성 여가활동 수요조사'에 따르면 '사회성 여가활동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74.4%로 높게 나타났다. 참여를 희망하는 활동은 '환경 관련(37.4%)' '교육활동(34.4%)' '예술 관련 활동(24.2%)' 등의 순이었다. 특히 소득이 높고 자신이 건강하다고 판단할수록 사회성 여가활동에 대한 의향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무료 자원봉사를 실천하는 은퇴 인구의 대부분은 중산층 이상으로 경제적 안정이 선결조건이다. 또한 고학력이나 전문성이 없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이나 학력ㆍ경험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우리궁궐지킴이'라는 문화해설사를 양성해 4대 고궁과 종묘에서 무료 자원봉사를 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 사단법인 한국의재발견에서는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주저하는 사람들을 위해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한다. 매년 12월 지원자를 모집해 1~3월에 60여시간의 기본이론교육, 4~9월 12주간의 수습활동을 거쳐 최종 해설사를 뽑는다. 현재 누적 활동자가 300명가량인데 절반에 가까운 40% 이상을 50대 이상이 차지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자원봉사자 320명 중에서도 50~60대가 60% 이상을 점하고 있다. 관련 분야 경력이나 전문성이 있으면 '전시해설 자원봉사자'로 지원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일반 자원봉사'로 참여할 수 있다. 경험이나 전문성이 부족하다 싶으면 여럿이 함께 봉사할 수 있는 기관이나 단체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에서 진행하는 '은퇴 노인의 사회참여 활성화를 위한 네트워크'나 퇴직 교원 같은 전문인력이 평생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금빛평생교육봉사단'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비영리단체(NPO) 연계 프로그램으로는 희망제작소가 40~60대 전문직 퇴직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해피시니어'가 일종의 퇴직자 학교인 '행복설계아카데미'를 통해 다양한 활동가를 배출하고 있다. 전문직 퇴직자들이 모인 비영리단체 '희망도레미'는 경제취약계층이 자립할 수 있도록 무담보 소액대출을 상담해주는 등 구성원들의 역량을 활용하고 있다. 1995년에 창립한 한국시민자원봉사회는 다양한 강연을 통한 '사회적 멘토'로 활약하고 있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연구소장은 "고령사회를 일찍 경험한 선진국의 직장인들은 정년 후에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한다"며 "NPO를 조직하거나 참여해 의료ㆍ복지ㆍ교육 등과 관련된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도 취미활동이나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약간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현역 시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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