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대혼란] 회생 가능 기업까지 벼랑끝… 기촉법 공백에 '제 2 팬택사태' 올수도

구조조정 대상 기업 54개… 채권단 물린 돈만 20조 달해
당국, 은행에 지원 압박 불구 법적 강제성 없어 효과 한계
20% 차지하는 비은행채권단 등돌리면 자율협약 어려워

기업구조조정관련 은행 부행장 회의9
금융감독원이 30일 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을 소집해 대기업 신용등급 재평가와 관련한 기업 구조조정 방안을 논의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회의에서 "구조조정 수요 증가에 대비해 은행이 충당금을 선제적으로 충분히 쌓고 이기적인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기자




법적 강제력 없이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제2의 팬택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채권단 자율로 기업 구조조정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가장 효율적인 도구였다. 실제로 기촉법 공백기를 맞았던 지난 2006년과 2011년에는 회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던 팬택 등이 채권단 자율협약에 실패하면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번에는 2008년 이후 구조조정 규모도 가장 크다. 올해 상반기 정기신용위험평가와 하반기 수시신용위험평가 결과 구조조정 대상은 금융회사 신용공여액(대출액) 기준 최대인 19조6,000억원이고 기업 수도 54개에 달한다. 특히 하반기 수시평가 결과 19개 회사가 새로 추가된 것은 평소 비공개 수시평가 결과에서 2~3개 늘어나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으로 많다. 신용공여액을 기준으로 봐도 19개 기업이 12조5,000억원을 빌린 셈이어서 타격이 크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기촉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채권금융기관 자율로 '기업 구조조정 운영협약'을 마련하기로 했다. 법적인 강제성은 없지만 금융당국이 나서 C등급 기업에 대한 채권단의 지원을 압박하겠다는 뜻이다.

금융감독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30일 "C등급 기업은 채무조정을 통해 살릴 수 있는 기업"이라면서 "개별 은행 입장에서는 취약업종에 해당하거나 여신 규모가 작고 담보가 없는 기업은 지원에서 빠지고 싶겠으나 대승적 차원에서 참여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용위험평가 단계상 세 번째인 C등급은 부실징후가 있지만 넓은 의미의 워크아웃을 통해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이다.


그동안 C등급 기업은 기촉법에 따라 채권단 중 75%만 합의하면 기업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채권단의 채무감면과 신규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또 구조조정의 효율성을 위해 은행이 산업자본 지분을 가질 수 있고 유동화 회사(SPC)가 참여하므로 은행의 채권액 부담도 줄었다.

그러나 기촉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일몰을 맞으면 채권단 100%가 동의해야 워크아웃이 가능하다. 특히 은행이 워크아웃에 참여하더라도 20%에 해당하는 저축은행 등 비은행 금융회사가 참여하지 않으면 자율협약은 삐걱거리거나 깨지기 쉽다. 은행이 기업 회생을 위해 지원하는 돈이 비은행 채권단의 빚을 갚는 데 흘러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촉법이 있으면 기초체력이 좋은데 잠깐 부채가 늘어난 기업을 살릴 수 있지만 기촉법 없이 법정관리로 가면 거래관계가 끊어져 회생이 어렵고 파산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2001년 기촉법을 도입한 후 두 차례 연장에 실패하면서 채권단 자율협약은 무산되기 일쑤였다.

기촉법이 처음 없어졌던 2006년 1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현대LCD·VK·BOE하이디스·현대아이티·팬택·팬택앤큐리텔 등 총 6개 기업이 자율협약을 통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 중 팬택 및 팬택앤큐리텔만 양사 합병으로 구조조정됐을 뿐 나머지 4개사는 채권단 간 합의도출 실패로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합병한 팬택도 2014년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졸업했다.

기촉법은 이후 재입법됐으나 또다시 일몰로 2011년 1월부터 5월까지 2차 공백을 맞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삼부토건·동양건설 등 다수의 건설업체들이 자율협약에 들어갔으나 채권단 간의 비협조로 시장 자율 구조조정이 무산됐다.

그러나 언제까지 기촉법에 의한 강제 구조조정을 실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팽배하다. 이 때문에 법원과 금융당국은 장기 과제로 법원이 주도하는 법정관리에 기촉법의 효율성을 담은 새 기업회생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임세원·김보리기자 w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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