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효모 진통제

지난 8월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생체공학자 크리스티나 스몰크 박사팀이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맥주 양조에 쓰이는 효모로 옥시코돈의 전구물질과 바이코딘의 약리성분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옥시코돈과 바이코딘은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진통제로서 스몰크 박사는 식물과 동물, 미생물에서 추출한 23개의 유전자를 효모의 DNA에 짜깁기하는 방식으로 ‘살아있는 화학물질 생산공장’을 구현해냈다고 표현했다.

예상대로 이는 진통제 산업에 획기적 진전을 이룰 성과로 인정받으며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옥시코돈과 바이코딘 같은 아편 유사제는 유용하면서 인기 높은 진통제지만 고가인데다 생산량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스몰크 박사팀의 방법을 사용하면 생산량의 대폭적 증진이 가능해진다.

다만 MIT의 정치학자 케네스 오여 박사를 포함한 일부 전문가는 이런 약물 생산의 민주화가 초래할 폐해를 우려한다. 향후 공정기술이 고도화되면 평범한 생물학도조차 손쉽게 비밀 마약공장을 세울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마약 단속기관은 이 같은 합성 아편의 범람을 막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요. 이 강력한 기술이 상용화되기 전에 잠재적 위험성을 파악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치약이 튜브 밖으로 나오면 다시 집어넣기가 힘드니까요.”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스몰크 박사팀은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뿐이다. 현 기술로 바이코딘 알약 한 알을 만들려면 무려 1만6,500ℓ의 효모가 필요하다. 상용기술이 완성될 때쯤이면 적절한 제가 생길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또한 그동안 과학자들은 이 효모를 활용해 다른 유용한 약물들을 개발해낼 것이다. 합성 생물학자들은 이미 수천 개의 후보 약물 명단을 마련해놓고 있다. 특히 이 유전자 조작 효모로 기존 약물의 성능 개선 및 최적화도 가능하다. 전문가에 따르면 이론상 중독성이 낮은 진통제와 내성을 키우지 않는 항생제, 심지어 항암제까지 개발할 수 있다고 한다.

“식물 자체는 이상적인 의약품을 지니고 있지 않아요. 인간이 개량한 것일 뿐이죠.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55억명
세계 인구 중 진통제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수. (출처: 유엔)


전구물질(precursor) - 어떤 물질대사나 화학반응 등에서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특정 물질이 되기 전 단계의 물질을 말한다. 전구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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