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허리 ‘중간관리자’를 배신하지 마라

[FORTUNE'S EXPERT] 신제구의 '리더십 레슨'


중간관리자는 경영자와 젊은 직원을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며 경영자의 의지를 조직에 전달하고 직접 움직이는 실행자다. 따라서 중간관리자는 경영자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에 있다.

조직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유기체(有機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직에는 계층이 존재하며 각 계층은 고유의 역할이 있기에 중요하지 않은 계층은 없다. 아울러 계층이란 관계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계층이 흔들리면 곧 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만다.

특히 중간관리자는 조직의 허리 역할을 하며 조직 전체의 관계를 연결하고 지탱해주는 고맙고 중요한 ‘맏형’이다. 경영자의 정책을 학습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조직구성원들을 직접 이끌며 성과를 창출하는 듬직한 존재가 바로 중간관리자다. 그들은 오랜 세월 실무를 담당하며 조직에 헌신해 왔다. 때로는 가족보다 조직을 혹은 자신보다 경영자를 위해 살아왔고 또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그러나 지금 중간관리자들은 혼란스럽다. 언제부터인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팀원을 만나야 하고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팀장이 팀원으로 전락하는 일이 흔해졌다. 쌩쌩하던 고참 직원이 승진을 포기하고 무기력한 침묵에 익숙해지거나 생존을 위해 모멸감을 선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신 없이 뛰면서 일했던 과거를 후회하곤 한다. 예상은 했지만 충격은 그 이상인 듯하다. 허리가 형편없이 허약해진 사람의 머리와 다리가 멀쩡할 수 있을까?

치명적인 매력을 회복하긴 어렵겠지만 인생을 함께해온 늙은 아내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늙은 남편이 밥이라도 얻어먹고 말년이 편안해진다는 평범한 진실을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경영자의 눈에 비친 중간관리자의 한계와 피로는 오래 전에 경영자의 뜻을 기꺼이 따르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중간관리자는 자신의 치명적인 매력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부디 오해가 없길 바란다. 지금 중간관리자의 느슨해진 몰입과 열정을 경영자와 조직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단지 중간 관리자들의 기여와 노고를 당장의 잣대로만 판단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귀가 얇다. 만병통치약처럼 구조조정만 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말에 우리 실정에 맞는지 검토해보기도 전에 성급하고 갑작스럽게 도입했던 그 많던 소위 글로벌 경영기법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동네 사람들 말만 믿고 우리아이를 윽박질렀던 것은 아닌지 은근히 추측해본다.

경영자가 명심해야 할 또 한 가지가 있다. 중간관리자의 운명을 젊은 직원들도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곧 닥칠 미래의 모습을 선배들의 뒷모습에서 날카롭고 까칠하게 예측하지 않을까? 젊은 직원들의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선배들을 무작정 몰아내고 그 자리를 내어준다고 해서 젊은 직원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마음으로 격한 감동을 받을 걸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선배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면서 그나마 있던 애정마저 더 식는다면 세월이 지난 후에 젊은 직원들의 이기심은 누구와 의논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누구와 함께 그들을 챙길 수 있겠는가. 이런 점들을 생각해보면 중간관리자에 대한 박대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경영자는 조직 내부 중간관리자의 정서를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그래도 중간관리자는 미우나 고우나 경영자 편이다. 그동안 쌓아온 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직원들은 경영자를 이해할 만큼 조직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중간관리자가 떠나면 경영자가 젊은 직원들을 직접 키울 것인가? 젊을 때는 어떻게 되겠지만 그들도 경영자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성장하고 판단한다. 더욱이 애정이 깊지 않은 경영자를 봉양할 의무를 기꺼이 포기할지 모른다.

지금은 모든 조직이 어렵고 위험한 시절을 겪고 있다. 이때 경영자에게 필요한 사람은 경영자를 잘 알고 이해해줄 수 있는 중간관리자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의 어려움은 잘 나가던 시절에 누렸던 경영자의 자기 과신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간관리자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옳지 않다. 중간관리자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무죄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경영자는 중간관리자가 조직의 비용을 초래하는 존재가 아니라 경영자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점을 인정하길 바란다. 리더십의 진가는 리더가 실패했을 때 드러나는 법이다. 만약 경영자가 곤경에 빠졌을 때 끝까지 남아서 경영자를 위해 헌신할 존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중간관리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따라서 중간관리자는 분명히 경영자 편이다. 그래서 중간관리자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함부로 판단하기보다는 그들의 변화를 도와야한다. 중간관리자의 잠재력을 깨우고 그들의 저력을 조직의 성과로 연결할 수 있는 경영자의 지혜와 신뢰를 보여주어야 한다. 허구한 날 바뀌는 글로벌 경영혁신 기법을 따르기보다는 중간관리자에 대한 차분하고 진정성 있는 관심과 존중이 경영자에게는 신토불이(身土不二) 경영기법이 될 것이다. 글로벌 경영혁신 기법들이 진정으로 만병통치약이었다면 경영자의 고민은 이미 끝났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중간관리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중간관리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예전에 말이다.

중간관리자는 경영자와 젊은 직원을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며 경영자의 의지를 조직에 전달하고 직접 움직이는 실행자다. 따라서 중간관리자는 경영자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에 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중간관리자를 너무 열 받게 하지 말아야 한다. 중간관리자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조직과 경영자에 대한 정이 말라버리고 나면 가장 불편한 존재가 바로 경영자다.

배터리가 나갔다고 자동차를 버리지는 않는다. 지금이라도 중간관리자의 회춘(回春)을 도와야 한다. 구관이 명관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중간관리자에게 제공한 것은 월급만이 아니다. 그들의 노련함과 판단력을 저렴한 비용으로 다시 구매해야 한다. 중간관리자들도 기회만 준다면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단지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적어도 가족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경영자의 다급한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쌀 떨어졌다고 식구들을 길거리로 내몰면 쌀을 구해올 사람도 잃는 법이다. 이젠 식구를 버리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믿음을 저버린 경영자를 위해 헌신할 직원은 없다. 조직을 살리기 위해 중간관리자에게 불가피한 충격을 가해야 한다면 먼저 진정성 있고 충분한 설명을 경영자가 직접 해야 한다. 깜짝쇼 같이 놀라운 조직개편만 갑자기 선포하는 비겁한 버릇을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경영자와 중간관리자의 화해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신제구 교수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겸 국민대학교 리더십과 코칭대학 원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주요 기업 등에서 리더십, 팀워크, 조직관리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한국리더십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크레듀 HR연구소장, KB국민은행 연수원 HRD컨설팅 팀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