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계급' '호갱' 취급에 분노… '열정페이' '절벽시대'에 좌절

유행어로 본 한국사회

2015년 유행어로 들여다본 한국사회는 '수저계급론'에 속 쓰리고 '절벽시대'에 좌절하며 한 해를 보냈다.

지난 10월 국내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흙수저 갤러리(게시판)'가 생겼다. 이 갤러리에는 4일 만에 2만여건의 글이 폭주했다. 흙수저는 부모로부터 부와 문화적 자본을 물려받은 금수저와 정반대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청년세대가 꺼내 든 수저계급론은 사실상 우리 사회가 '신계급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금수저들의 세습주의와 나머지 수저들의 능력주의가 기이하게 결합한 게 2015년의 한국사회"라고 설명했다.

흙수저를 자칭하는 청년들은 취업·연애·결혼을 포기한 자신을 자조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는 여기에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을 포기해야 한다는 '오포세대'로 번졌고 꿈과 희망까지 버려야 한다는 '칠포세대'로 이어졌다. 계층이동이 불가능하다는 뜻에서 '절벽시대'라는 말도 유행했다.


턱없이 낮은 임금에도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해야 하는 '열정 페이(pay)'라는 말도 생겼다. 취업 때문에 연애를 유예한다는 의미의 단어도 등장했다. '삼귀다'는 사귀다의 전 단계로 연애를 유예한 관계를 말한다.

국내 기업들의 소비자 홀대를 비꼰 '호갱'이라는 신조어도 나타났다. 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인 호갱은 기업들이 말로만 '고객님'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각종 상품과 서비스를 밀어넣은 꼼수를 꼬집는 말이다. 통신사의 휴대폰 요금제 권유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거래에 적용된다.

가격을 둘러싼 정부와 기업·소비자 간 갈등은 '~통법'을 돌림자로 한 유행어로 남았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수입맥주 가격 제한을 둔 '맥통법' 논란으로 이어졌다. 수입 맥주가 4~5캔씩 묶어 저가에 판매되자 국산 맥주업체들이 이를 문제 삼고, 정부가 이를 제재하려다 소비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사회적 분노는 '혐오' 현상으로도 옮겨붙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정부와 사회에 분노했던 '앵그리맘'들은 자기 자식만 위하느라 남에게 피해를 주는 '맘충'으로 폄하됐다. 1980년대 경제 호황기에 사회에 진출한 기성세대는 '개저씨(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로 추태를 부리는 중년 남성을 가리키는 속어)'가 됐다. 여성혐오현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국남자를 벌레에 빗대는 '한남충'도 등장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업난은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우리 사회는 집단주의 문화가 강해 개인의 좌절을 집단이나 사회에 돌리는 경향성이 더 크다"며 "특히 젊은층이 겪는 사회에 대한 분노조절 장애가 결국 빈부를 나누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임세원·정혜진기자 w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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