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신성장 동력으로 정한 친환경·스마트 자동차 부품 사업이 순항을 하고 있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4개 계열사를 중심으로 자동차 부품 시장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미래 자동차의 핵심 부품을 만들고 있는 LG그룹의 기술 역량을 들여다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올해 1월 14~15일 경기도 이천시 LG인화원에서 열린 그룹의 ‘글로벌 최고 경영자 전략회의’. LG그룹의 미래 전략사업 방향을 정하는 자리였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이 회의에서 논의된 핵심 안건 중 하나는 ‘ 친환경(전기차)·스마트 자동차’였다. 전기차와 스마트카를 구성하는 부품과 통합 솔루션 사업을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게 목표로 정해졌다.
LG그룹의 ‘친환경(전기차)·스마트 자동차 드라이브 전략’은 최고경영진의 확고한 의지가 뒷받침됐기에 나올 수 있었다. 우선 그룹의 수장 구본무 회장이 올해 초 신년사에서 “친환경 자동차 부품 등 신사업은 일등을 목표로 철저하고 용기 있게 키워 나가야 한다”고 임직원들을 독려한 바 있다.
자동차 부품은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이다. 자동차를 구성하고 있는 2만 개 이상의 부품 중 하나라도 결함이 있으면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자동차 부품은 그만큼 신뢰도와 안전성이 중요하다고 할 수있다. LG그룹이 자동차 부품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도 있었다. 기존 사업에서 검증된 기술력을 자동차부품에 이식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자동차 부품을 한 번에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도 LG에겐 강점 중 하나였다.
이미 LG그룹은 본격적인 미래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 확대를 위해 2014년 말 계열사 사업구조를 개편한 바 있다. 관련 사업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는 곳은 LG전자 VC(Vehicle Components 자동차부품)사업본부로 정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LG이노텍( 차량용 센서 및 LED), LG디스플레이(차량용 디스플레이), LG화학(전기차 배터리) 등 계열사의 역량을 한데 모았다. LG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시너지 체계’를 구축해 새로운 성공 신화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LG의 이 같은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LG는 차량 부품 디자인, 소재, 각종 모터, 디스플레이, 음향, 공조 등을 한꺼번에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특히 전기차 분야에선 기존 부품업체들보다도 공급할 수 있는 부품의 폭이 넓다”고 설명했다. LG전자는 기존에 만들던 무선통신 장비를, LG이노텍은 PC용 모터를 개량해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자동차가 친환경·인터넷·경량화 쪽으로 변하는 건 분명하다”며 “LG가 이 같은 미래 트렌드를 읽고 기존에 강점이 있는 전자 · 통신· 배터리 등의 사업을 응용해 자동차에 적용한 건 모범적인 신사업 개발 사례라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LG그룹의 자동차 부품 사업 매출은 지난해 이미 3조 원을 돌파했다. 전자제품·음향·모터 등 분야에서 오랜 기간 쌓아온 탄탄한 기술력에 연구개발 역량을 더해 자동차 부품 시장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4개 계열사가 지난해 자동차 부품 사업으로 올린 매출액은 3조500억원. 이는 2013년 2조4,000억 원에서 30% 가까이 성장한 성과였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 6위인 현대다이모스가 약 2조2,000억 원 매출을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LG는 이미 국내 5위권 자동차 부품 업체로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이런 LG그룹에게 최근 전기차 부품 기술력을 인정받은 경사까지 있었다. 지난 10월 21일 미국 최대 자동차업체 GM이 차세대 전기차핵심 부품 공급자로 LG전자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GM의 글로벌 제품개발 및 구매 총괄을 맡고 있는 마크 로이스 부사장은 이에 대해 “GM은 전기차 분야에서 리더십을 공고히 하기 위해 파괴적 혁신이 필요했다”며 “쉐보레 볼트와 스파크 EV에서 구축한 GM의 기술력과 LG의 경험을 결합시켜 장거리 운행이 가능한 전기차를 합리적 가격으로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협력으로 LG전자 VC사업부는 GM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인 전기차 ‘ 쉐보레 볼트 EV’ 에 들어갈 핵심부품 11종을 공급하게 됐다. 이번 GM 부품 공급 선정 건은 LG그룹의 신사업 개척사에서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 부품 11종에는 전기차를 직접 움직이는 심장 격인 구동 모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LG전자가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구동 모터를 공급한 첫 사례라는 귀중한 의미를 갖고 있다.
구동 모터가 핵심 장치인 만큼 설계는 GM이 맡았다. 하지만 제작과 생산은 LG전자에 맡겼다. GM이 LG의 자동차 핵심 부품 생산 역량을 높게 산 것이라는 평가할 수 있다. 이외에도 LG전자는 GM에 전기차 인버터도 공급하게 된다. 인버터는 직류 전기를 교류로 변환하고 모터를 제어하는 장치다. 구동 모터로 전달되는 전기를 관장하는 장치로 이 역시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다. 그만큼 LG전자가 차세대 자동차의 핵심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 동안 LG전자 VC사업부는 자사 모바일 기술을 활용한 내비게이션이나 오디오시스템등 인포테인먼트 부품을 주로 공급해왔다. 움직이고 달리는 자동차의 핵심 장치인 구동 장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때문에 LG전자 VC사업부가 자동차 구동계 핵심 부품을 만들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시장 의구심이 컸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VC사업부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기술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주문도 많았다. 이번 GM 핵심 부품 공급 건은 이 같은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확실한 전환점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LG전자 VC사업본부 이우종 사장은 “GM의 전기차 개발 파트너 선정을 계기로 미래 자동차의 핵심부품 개발사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라며 “GM과의 협력을 발판으로 IT 기업인 LG전자가 전기차 시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에는 LG화학에서도 또 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LG화학은 지난 10월 27일 중국 난징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준공했다는 소식이었다. LG화학은 이 공장 완공으로 고성능 순수 전기차 5만 대 이상(320km 이상주행이 가능한 전기차 기준),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자동차의 중간 단계로, 전기모터와 내연기관 엔진을 함께 사용해 달리는 자동차) 기준으로는 18만대(연간 기준) 이상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생산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LG화학은 새로운 공장 준공으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공략해 시장을 선도해 나갈 예정이다. 우선 2020년까지 단계적인 투자를 통해 생산 규모를 현재보다 4배 이상 늘려 고성능 순수 전기차 20만대 이상(PHEV 기준 70만대)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생산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이를 통해 현재 수백억 원 규모인 중국전기차 배터리 매출을 2020년까지 연간 1조5,000억 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시장점유율도 25% 이상 달성해 경쟁사가 넘볼 수 없는 ‘확실한 1위’의 위상을 굳혀나갈 생각이다.
LG화학이 글로벌 생산 거점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는 배출가스 규제 강화로 친환경차 시장에서 큰 폭의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LG화학은 2016년 이후 납품할 수 백만 대 규모의 배터리 물량을 이미 확보한 상황이다. 현재 LG화학은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미국의 GM과 포드, 유럽의 벤츠와 아우디, 르노, 볼보, 중국의 상해기차와 장성기차, 체리자동차 등 20여 곳의 완성차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LG화학은 현재 절대우위에 있는 연구개발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번 충전에 320km 이상 주행할 수 있는 배터리도 이미 개발해 놓은 상태다. 이 배터리는 곧 양산을 앞두고 있어 지속적인 추가 수주도기대되고 있다. LG화학은 이를 바탕으로 경쟁사와 격차를 더욱 벌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선도주자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나갈 계획이다.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 역시 미래 자동차 부품 사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유럽, 미국 등 세계 유수 자동차 업체에 정보 안내 디스플레이, 계기반 등 자동차용 디스플레이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자동차용 디스플레이로 6,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복잡한 계기반을 없애고, 하나의 디스플레이로 차량 전체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전환하면서 관련 시장도 점차 커지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이 같은 시장 성장세를 고려해 차량용 디스플레이로 2016년 1조 원, 2018년 2조 원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5’에 참여해 “우리 회사는 현재 자동차용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점유율 16%로 3위권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2016년에는 이를 23%까지 끌어 올려 1위 자리에 오를 것”이라며 “독일·미국 등 주요 자동차 업체를 대상으로 이미 80% 이상의 수주 물량을 확보한 상태”라고 밝히기도 했다.
LG이노텍은 소재· 부품분야 핵심 기술을 융복합하며 미래차량 전장부품 종류를 빠르게 다변화하고 있다. 차량용 모터와 센서, 차량용 카메라모듈, 차량용 무선통신모듈, LED, 전기차용 배터리 제어시스템(BMS, Battery Management System), 전력변환 모듈 등 보유하고 있는 제품군만 20여 종에 이르고 있다. 매출도 2009년 500억 원에서 지난해 5,300억 원으로 5년 새 10배 이상 늘었다. LG이노텍은 2007년 독자 기술력으로 개발한 브레이크 잠김 방지장치(ABS, Antilock Brake System)모터와 전자식 조향장치(EPS, Electric Power Steering System) 모터를 시작으로 그 동안 차량 전장부품시장을 꾸준히 공략해 왔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초로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차량용 듀얼클러치 변속기(DCT, Dual Clutch Transmission)용 모터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무선통신기술을 바탕으로 블루투스·와이파이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차량용 통신모듈을 양산하는 등 차량 전장부품 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해나가고 있다.
LG그룹의 미래형 자동차 시장 공략은 분야를 넘나들며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LG그룹은 아직 결과에 만족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선도적 위치를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