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대혼란] 정부 "유화-TPA 30%·철강-합금철 40% 감산하라" 최후통보

구조조정 구체안 들여다보니
해운업계 부채 400%로 낮추면 1조4000억 규모 선박펀드 지원
조선업 수주 수익성 평가 의무화
건설, 부실업체 경보 시스템 도입



정부의 산업별 구조조정 구체안이 공개됐다. 해운 업체는 부채 비율을 400% 이하로 낮추면 1조4,000억원(약 12억달러) 규모의 '선박펀드'를 이용할 수 있게 했고 석유·화학과 철강에서는 생산설비를 각각 30%·40%씩 줄이는 것을 유도한다. 업체 간 서로 떠밀며 감축하지 않으면 정부가 나서 중재할 방침이다. 사실상 최후통첩인 셈이다.

정부는 30일 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산업별 구조조정 추진 현황과 향후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컨트롤타워를 맡고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 차관이 참여하는 구조조정 고위협의체를 지난 10월부터 가동해 내놓은 결과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조4,000억원의 선박펀드를 조성한 것이다. 부채 비율이 400% 이하인 기업만 이용할 수 있어 해운사의 자발적인 부채감축을 유도한다. 3·4분기 말 현재 국내 해운업계 '빅2'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채 비율은 각각 687%·980%에 이르며 전체 평균도 2010년 247%에서 지난해 378%로 불어났다. 정부는 펀드 규모를 추후 이용실적을 봐가며 확대할 방침이다.


방식은 해운사가 선호하는 나용선(BBC·Bare Boat Charter)을 택했다. 펀드가 해운사에 신규 선박 운영권을 주고 해운사는 배를 운영해 생긴 수익으로 펀드에 사용료를 지불한다. 해운사 입장에서는 비용부담 없이 새 선박을 사용할 수 있는데다 선박 소유권이 펀드에 있어 운용기간이 끝난 뒤 매각 리스크를 지지 않아도 된다.

재원은 민관 합동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일반 금융기관이 50%,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정책 금융기관이 40%, 해운사가 10%를 부담한다. 보증은 선순위는 무역보험공사가, 후순위는 해양보증보험이 담당한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국내 해운업은 단기적인 지원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펀드운용에 총력 지원을 하는 만큼 업체들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구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 급변하는 해운 시황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뉴욕의 매리타임 해운거래소, 중국 상하이 해운거래소와 같은 '한국해운거래소' 설립도 추진한다.

중국발 과잉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과 철강 분야의 구조조정안은 보다 구체화했다. 무엇보다 자율감축 목표를 제시한 점이 특징이다. 저유가, 중국의 자급률 상승, 수요둔화 등 3중고에 처한 유화 분야에서는 페트병 등의 원료인 텔레프탈산(TPA) 생산설비를 30%(약 150만톤) 감축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국내 TPA 업체의 2012~2015년(11월까지) 누적 적자는 8,450억원에 이른다. 다만 합성수지·고무, 기초유분, 중간연료 등은 오는 2017년 이후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수년째 공급과잉 문제가 지적된 철강은 합금철에 메스를 댄다. 현재까지 11만톤의 설비를 폐쇄한 데 이어 앞으로 총 40%(약 40만톤)감축을 추가로 이끌어낸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철강업계는 올해 들어 3·4분기까지 총 64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조선업에는 '수주산업 수익성 평가기구'를 새롭게 만들 방침이다. 정책 금융기관이 대규모 조선해양 프로젝트에 금융지원을 하기 전에 전문기관의 수익성 평가를 의무화한다. 건설업에서도 부실업체 실태 조사 및 조기 경보 시스템을 도입해 부실기업을 솎아내고 잘하는 기업을 밀어주기 위해 20억달러 규모의 '코리아인프라펀드'를 조성한다. 해외 인프라 사업 진출을 돕는 것으로 한국투자공사(KIC)가 재원을 낸다.

김 처장은 "앞으로도 채권단 중심으로 정기 및 수시 신용위험평가 등을 통해 상시·선제적 기업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것"이라며 "취약업종에 대해서는 정부 내 협의체를 통해 구조조정 방향을 마련해 채권단의 구조조정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규·조민규기자 classic@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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