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호황도 좋지만 불황은 더욱 좋다

불확실성 클수록 멀리 내다보고
세계경제 변곡점 제대로 활용
소프트웨어형 기업 변신 기회로


며칠 전 크리스마스 때 고향인 강릉에 들렀다 관광객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온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38년 만의 럭키문이라고 해서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보려고 바닷가를 찾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삶이 팍팍하다 보니 뭔가 기댈 만한 작은 희망이라도 간절히 찾아다니는가 싶어 마음 한구석에 짠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연말을 맞아 사회 어디를 둘러봐도 어둡고 무거운 얘기들뿐이다.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회사에서 밀려나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가게들은 장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이다. 올해 10대 뉴스를 고르느라 한 해를 열심히 되돌아봐도 좋고 반가운 소식을 찾기 힘들었을 정도다.

지구촌이 올해 유난히 따뜻한 겨울을 맞고 있지만 어느 나라도 경제여건이 좋은 곳은 찾기 힘들다.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탓이다. 더 큰 문제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화의 속도와 폭은 갈수록 빨라지고 리스크는 더욱 다양해지는 변혁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기업마다 새해에는 수비경영에 치중한다며 탄탄한 내실을 갖추는 데 주력하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오히려 세계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며 힘차게 부활했던 저력을 보인 바 있다. 불황일수록 기업의 숨겨진 저력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남보다 더 멀리 내다보고 신속하게 구조재편에 대응한 덕택이다. 다들 어렵다고 울상을 짓지만 우리 경제에도 희망찬 소식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벤처기업 수가 3만개를 넘어서고 한 해 매출이 1,000억원을 웃도는 곳만 460곳에 달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벤처기업당 매출액이 전년에 비해 11.2%나 늘어나면서 대기업의 실적을 웃도는 추세가 6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소프트웨어와 정보통신·바이오 등 신성장 분야에서 벤처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한국 경제에 가장 절실한 것은 토목공사나 금리정책이 아니라 활발한 신진대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과거의 중후장대형 산업구조가 벽에 부딪힌 만큼 벤처가 앞장서고 창업이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올해 신설법인이 9만개를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반가운 일이다. 물론 창업구조를 다변화하고 내실을 갖추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지만 그만큼 창업생태계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 의미가 크다.

최근 자신감을 되찾고 있는 미국 경제의 부활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철저한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기본으로 삼아 기업들의 경쟁과 도태를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 1990년대 미국을 대표했던 자동차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곧바로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구글처럼 새로운 혁신기업들이 등장해 일자리를 만들고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도 세계 경제의 주요 변곡점을 제대로 활용하자면 소프트웨어형 기업으로의 변신이 필요한 때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들은 이미 소프트웨어와 서비스플랫폼을 구축해 이익을 올리고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를 맞아 우리 기업들이 배워야 할 생존방식이 아닐 수 없다. 경영의 귀재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호황도 좋지만 불황은 더욱 좋다"고 설파했다. 그는 '불황을 이기는 12가지 지혜'에서 경영자가 어떻게든 폭풍우를 이겨내겠다는 용맹심과 낙관적 사고가 없다면 회사는 망한다고 단언했다. 불경기야말로 기존 사업의 비전을 확인하는 절호의 기회임을 인식하고 위기 너머의 새로운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비관론자에게는 미래와 과거만 존재할 뿐 '현재'는 없다고 한다. 그저 불투명한 앞날을 한탄하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해를 맞아 모두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2016년에는 우리에게 밝고 희망찬 소식이 더 많이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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