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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작품은 명암 구분이 뚜렷해 어디서든 맨 먼저 눈길을 끕니다. 보통은 명암 대비를 위해 어두운 부분에 검정색 같은 것을 쓰지만 세잔은 순색의 짙은 초록을 사용해 '채도 대비'로 표현합니다. 세잔의 그림을 보면 순수한 색의 대비가 주는 감동이 가슴을 치고 수직으로 쭉 내려가 오장까지 닿는 듯해요. 작품을 통해 눈뿐 아니라 머리와 가슴이 모두 자극받는 것이죠."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를 찾은 화가 서용선(64)은 세잔의 '엑상프로방스의 서쪽 풍경'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작업에만 몰두하기 위해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직을 스스로 버리고 나온 그는 지난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으며 역사와 도시에 관한 분명한 문제의식을 작품에 담고 있다. 동시에 매년 '풍경'을 소재로 별도의 기획전을 열고 있는 작가다.
"클로드 모네의 작품이 4점이지만 시기별로 다르네요. '팔레즈의 안갯속 집'의 경우는 빛에 의한 산란 효과로 형태가 허물어지다시피 했지만 '에트르타 해변의 고기잡이의 배' 같은 작품은 사실주의의 경향도 대범하게 섞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퇴유에서 바라본 봄 풍경' 같은 작품은 가늘게 그린 나무들이 아름답습니다."
이어 폴 고갱의 작품으로 눈길을 돌린 서 작가는 "인상주의 미술은 시대 배경과 같이 이해해야 하는데 이들이 주로 그린 지역은 프랑스 파리 근교의 변두리 지역으로 도시 중심과 자연이 만나는 지점에서 문명·도시와 괴리되지 않는 선에서 풍경과 변화하는 시대를 그린 것"이라며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인상주의가 갖고 온 '빛의 혁명'은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우리 주변 풍광에서 포착했다는 점에서, 또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깊이 연관돼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이렇게 사랑받는다"고 평가했다.
마침 서울의 추위를 벗어나 경남 마산에서 풍경화 작업을 하던 중 전시장을 찾은 서 작가는 "풍경화를 그린다는 것은 진짜 자연과의 싸움"이라며 "여름은 더운 대로, 겨울은 추운 대로, 햇빛에 눈이 상하고 바람이 매섭다 하더라도 그 같은 조건에서 탄생한 작품이기에 귀하다"고 말했다.
관람객이 3,000명 이상일 정도로 붐비는 전시장에서 서 작가는 "15년 전 일본 도쿄미술관에서 열린 인상주의 전시를 보기 위해 오전7시부터 2시간 줄을 서 들어간 적이 있다"며 "그때가 생각날 정도로 이곳 관람객이 많아 좋은 전시에 대한 국민의 갈증이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4월3일까지 열리며 새해 첫날도 쉼 없이 관람객을 맞는다. 1588-2618.
/조상인기자 ccsi@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