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에서 엔화표시채권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엔화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환차손을 우려한 기업들이 엔화 채권 발행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롯데 등 지금까지 엔화자금 조달에 적극적이었던 기업들까지 원화나 달러화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7일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일까지 은행ㆍ카드사 등 금융기관을 제외한 일반 기업들이 국내에서 발행한 엔화표시채권은 지난 8월 LG디스플레이가 발행한 100억엔 규모의 변동금리부채권(FRN) 단 1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발행건수가 9건(835억엔), 2008년에는 18건(1,535억엔)에 달했던 것이나, 달러화표시채권이 올해 23건을 발행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눈 여겨 볼 것은 그 동안 엔화표시채에 발행에 적극적이었던 기업들 조차 엔화 대신 원화나 달러화표시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제과는 지난해 7월과 12월 각각 100억엔과 95언엔의 엔화표시채를 발행했고 롯데쇼핑(6월), 롯데칠성(7월), 호텔롯데(11월) 등도 각각 100억엔 규모를 시장에 내놓았지만 올해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대신 롯데칠성과 롯데쇼핑은 올해 엔화 대신 달러화표시채권을 내놓았다. 양사는 지난 2006년 이후 단 한번도 달러화표시채권을 발행한 적이 없었다. 이외에 호남석유화학, 포스코파워, KT 등도 엔화에서 달러화로 통화를 바꿨다. 만기도 짧아져 이전에는 대부분 3년 만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올해 엔화채를 발행한 LG디스플레이는 2년으로 만족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엔화표시채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최근 들어 엔화 가치가 빠른 속도로 상승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이 엔화로 회사채를 발행할 경우 막대한 환차손에 대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행 비용까지 비싸다 보니 굳이 발행하기 어려운 엔화보다 원화나 달러채로 발행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증권사의 한 해외채권 담당 딜러는 "국내 기업들이 엔화표시회사채를 발행하려고 해도 가격 조건이 별로 좋지 않고 만기도 길게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특히 발행비용이 국내보다 비싸기 때문에 굳이 엔화로 발행을 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의 채권 딜러도 "요즘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엔화표시채를 선호하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최근에는 가격 메리트 때문에 환 변동에 대비한 스왑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엔화를 더욱 꺼리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