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넘쳐나도 굴릴곳이 없다”

“뭉칫돈이 들어오지만 굴릴 데가 없습니다. 안 받을 수도 없고…. 하루종일 대출세일을 위해 돌아다니지만 돈 쓰겠다는 데가 없어요. 정말 고통스럽니다.”(A은행 C지점장) “요즘 되는 사업이 있습니까.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간다지만 그래도 은행에 1억원을 넣어두면 한달에 40만원 정도는 주니까 씀씀이를 줄이고 아껴 써야죠”(퇴직자 K씨) “돈되는 사업이 있으면 당연히 투자하지요. 정부는 투자하라고 독려하지만 경기는 자꾸 위축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 현찰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S그룹 자금담당 O상무) 은행ㆍ기업ㆍ개인할 것 없이 돈굴릴 데가 없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더구나 새해들어 새정부의 강도높은 개혁방침과 미ㆍ이라크 전운고조로 경제주체들마다 `경제하려는 의지`가 꺾이면서 모두들 안전자산에만 눈을 돌리고 있다. 돈놀이가 본업인 금융사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마저 안전한 국고채만 사들이다보니 시장금리는 연일 사상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표금리인 국고채3년물은 29일 4.75%로 0.06%포인트 떨어져 사상최저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이 달 들어 국고채 거래량은 24일까지 하루 평균 3조원을 넘었다. 지난 달의 두 배 수준이다. 은행의 평균 예금ㆍ대출금리도 지난 12월 최저치를 기록한 후 이달 들어서도 연일 하락세다. 기업들은 투자를 안 하고 금융자금은 남아 돈다. 돈이 실물에 투입되지 못 한 채 `재테크 시장`에서만 겉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무기명채권은 돈가진 사람들의 집중공략대상이다. 10~20% 프리미엄이 붙지만 구하기조차 힘들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금 사재기도 확산되고 있다. 국제 금값은 온스당 370달러에 육박해 6년래 최고수준이고 국내금값도 최근 2주새 5% 가량 오른 돈당 5만4,500원에 거래되고 있다. 개인도 기관도 돈이 넘치지만 투자심리는 극도로 위축돼 있다. 이라크 전쟁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고 북한 핵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못찾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전문가들은 투자위축과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으로의 자금편중을 부채질하고, 이 같은 현상은 연쇄적인 금리인하를 촉발해 결국 소비위축과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나동민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팀장은 “국내외 정세의 `불확실성`으로 금융자산이 국고채와 무기명채권, 금 등 비교적 위험이 적은 `피난처`로 도피하려는 쏠림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화용기자 s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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